무슨 놈의 병균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 봄이 오고 산과 들에 꽃들이 활짝 웃건만, 달려나가 그 꽃을 마주할 수 없다니. 이런 푸념을 하면서 옛글을 읽다가 우연히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순조(純祖)의 장인으로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연 김조순(金祖淳)이 22세 청춘의 시절 꽃 아래 술에 취해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지은 시다.
“일 년이라 삼백하고 육십 일, 백 년이면 삼만하고 육천 일. 손으로 날을 헤아려보면 지루하건만, 몸으로 날을 보내면 어찌 이리 급한가. 동산의 천 그루 꽃을 급하게 보니, 내 마음 슬프고 정신마저 어찔해지네. 비바람이 꽃 재촉해 늙어지게 하는데, 저녁에 날리는 꽃잎 아침에 핀 것이었지. 우리 인생 백 년을 다 산다 한들, 나그네 봄빛은 구천 일에 불과하건만, 병들어 근심하는 날이 그중에 반이라, 맛난 술 좋은 벗은 함께하기 어렵다네. 일생에서 꽃 보는 날을 세세히 헤아려도, 춘삼월 중에 아무 일 없는 때 정말 없구나.”
춘삼월은 길어야 90일이니, 백 년을 산다 하더라도 봄날은 9000일밖에 되지 않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꽃을 볼 수 있는 날은 그중에 다시 며칠에 불과하다. 조선 중기의 시인 이달(李達)이 “누대에 달빛 고우면 도리어 몸이 아프고, 꽃잎 지는 시절이면 언제나 바람이 많은 법(好月樓臺還有病 落花時節每多風)”이라 한 대로 따뜻한 봄날에 오히려 잔병이 잦고 꽃이 질 때 얄밉게 바람이 더 거세지 않던가. 그러니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을 제하고, 몸이 편치 못하여 바깥출입이 어려운 날도 제하여야 한다. 꽃을 아직 모르는 철부지 시절이나 꽃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노년의 세월도 다시 빼야 한다. 이렇게 하여 얼마 남지 않은 봄날이라 하더라도 맛난 술을 마주하고 좋은 벗과 함께 누리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꽃구경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 봄날의 꽃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날은 과연 며칠이나 되는가! 술 한잔 들고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앞산의 노인네는 머리를 땅에 박고서, 백번이나 꽃을 봐도 마음에 차지 않네. 백번이나 꽃을 본들 지겨울 리 있겠나, 게다가 백 년까지 살 몸도 아닌 것을. 어찌하여 꽃 아래 와서 놀지 않는가, 훗날이면 꽃 보는 이가 딴 사람일지니. 꽃 있으면 꺾어보고 술 있으면 마시게나, 잠깐 사이 귀밑머리 은빛으로 변할지니. 꽃이 피고 꽃 지는 것 몇 번 보겠나, 홍안도 한 번 늙어지면 돌아오지 않으리니. 어찌 알겠나 오늘 보는 이 꽃 앞에서, 옛사람도 청춘 시절 취하지 않았을 줄!”
소동파(蘇東坡)가 “봄날 밤의 한 시각은 천금에 이른다(春宵一刻値千金)”고 하지 않았던가. 더욱이 짧은 봄날의 가치는 늙어봐야 아는 법. 노인은 지겨운 줄도 모르고 코를 박고 꽃을 본다. 혹 내 인생에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꽃을 떠날 수 없다. 오늘 보고 있는 이 꽃을 내년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와서 본다고 생각하면 한 번이라도 더 꽃을 보고 싶다. 새파란 젊은이가 노인의 마음을 대신하여 이렇게 시를 지었다. 내 마음이 끌리는 까닭이다.
올해로 태어난 지 600년 되는 조선 초기의 대가 서거정(徐居正)은 봄을 보내며 이런 시를 지었다. “내 봄을 잡고 싶어도 봄이 머물지 않고, 내 봄에게 물어보아도 봄은 답하지 않네. 춘삼월 90일 중에 봄날이 얼마나 된다고, 당당히 나를 등지고 어디로 가는가!” 내 마음 같다. 앞서 본 이달은 병들어 맞은 봄날, “꽃 필 때 병들어 문 굳게 닫고서, 억지로 꽃 꺾어 술동이 앞에서 시 읊조려 보네. 덧없는 세월이 꿈결처럼 흘러가 버렸으니, 봄을 본 들 젊은 시절의 그 마음이 다시 있겠나!”라 하였다. 이 또한 내 마음 같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