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연말이면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백신 개발 시기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연말까지는 우리가 백신을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매우 조만간 백신을 갖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미국이 개발한 백신이 세계를 위한 백신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기조인 ‘미국우선주의’가 백신 개발에도 똑같이 적용될 경우 새로운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본질적으로 국제 문제를 권력을 향한 쟁탈전으로 접근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신 개발·공급 문제가 국가 간 경쟁으로 전환돼도 이를 기꺼이 허용할 것이라는 공포가 있다”며 “이 경우 가난한 국가들은 백신을 확보하는 단계부터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백신 개발의 성과를 독점할 것이라는 정황 증거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정부는 4일 코로나19에 대한 국제 공동 대응을 약속하는 유럽연합(EU) 주재 화상 국제회의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는 EU 회원국과 국제자선단체,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해 코로나19 백신 공동 개발을 위해 약 1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문제를 논의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EU 지도자들은 국제 펀드 조성을 요청하며 “모두에 의해 만들어진 백신이 모두를 위해 공급된다면 이는 21세기의 유일한 전 세계적 공공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정부는 지난달 24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출범시킨 ‘코로나19 백신 개발 이니셔티브’에도 불참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EU 국가들은 참여했지만 미국은 ‘WHO의 중국 편향성’을 문제 삼으며 참여를 거부했다.
중국도 당시 국제 공조에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미 국가안보·정보당국 관계자들은 코로나19 발원지라는 오명을 얻은 중국 정부가 백신 선점으로 국제적 위신을 회복하려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중국 정부는 지금 당장 투여 가능한 백신을 개발하면 그게 누구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EU가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백신 공유의 길을 선택한 데 반해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은 백신 개발 선점에만 목을 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나홀로 백신’ 정책은 당분간 변화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작전명 초고속’ 프로젝트를 가동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일정을 8개월 앞당기고, 내년 1월까지 3억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을 비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이 프로젝트에 대해 “내가 그 작전의 책임자”라며 “해낼 수 있는 최대치가 무엇이든 우리는 결국 (백신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아내 멀린다 게이츠 ‘빌&멀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은 “최악의 상황은 백신을 사용할 수 있게 돼도 그것들이 최고 입찰자에게 가게 되는 경우”라며 미국의 백신 독점을 경고했다. 게이츠재단은 현재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막대한 기부금을 제공하고 있다. 멀린다는 “코로나19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이 국제협력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