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외면한 ‘아프면 쉬기’… 직장인들 “공무원만 쉬겠지” 냉소

입력 2020-05-05 04:06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으로 4일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정문에 ‘휴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부 지침이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방역으로 전환되면서 그동안 휴관했던 국립 문화예술시설들이 6일부터 부분 재개관한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서울, 과천, 덕수궁, 청주 4관을 재개관한다. 다만 사전예약제를 실시하거나 시간당 입장 인원수를 제한해 ‘거리두기 관람’을 진행한다. 연합뉴스

“아프면 3~4일 쉬라고요? 직장인들 현실을 알고도 그런 대책을 내놓는 겁니까.”

정부가 6일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생활방역)’로 전환하면서 내건 5대 개인방역 수칙 중 제1수칙인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가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하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직장인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프면 쉴 수 있는 공무원과 그렇지 못한 직장인·일용직 노동자 간 사회적 차별 논란도 벌어질 전망이다.

서울 지역 자동차 제조 하도급업체에서 차 선팅·코팅 업무를 하는 장모(35)씨는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프다고 3~4일을 쉬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정당한 휴일을 보장받긴 어렵다”며 “이마저도 수당이 제외되기 때문에 그냥 참고 일하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할 거 같다”고 말했다.

하루하루 수당을 받는 일용직 노동자의 처지는 더 심각하다. 세종의 한 이삿짐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김모(45)씨는 “사장들은 어차피 일용직으로 일할 사람을 구하기 때문에 내가 3~4일 못 나가면 다른 사람으로 자리를 채울 게 분명하다”면서 “이삿짐일을 하는 사람 중에 아프다고 3~4일 안 나가고 아예 일자리를 잃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강북구 스포츠클럽 강사인 이모(33·여)씨는 “아프다고 3~4일 쉬겠다고 하면 사실상 일을 그만두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실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난달 12~26일 실시한 대국민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생활방역 수칙 중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에 대한 국민 의견 개진 비율이 28.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민의 최다 질문도 ‘쉴 수 없는 상황에서의 대응방법’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해결책으로 “직장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김강립 중대본 1총괄조정관은 “대부분의 기성세대가 그동안 아파도 학교 가고 출근하는 문화에서 성장해 왔다”며 “우선 ‘아프면 3~4일 집에서 쉰다’는 권고안이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건강보험 가입자가 질병·부상으로 치료받는 동안에 상실되는 소득이나 현금수당을 보전해 주는 ‘상병(傷病)수당’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8000억∼1조7000억원이나 되는 재원 소요가 걸림돌이다.

정부는 또 이 수칙을 공공기관에서 시범 적용키로 해 직업 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아파서 쉴 경우 대체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아직 아이디어 차원이긴 하지만 단기 일자리 확대 등과 이를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 창출 관련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서 보다 구체화된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모규엽 최재필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