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 시작되는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을 앞두고 관가에서는 묘한 ‘눈치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40만~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아야 할지 아니면 기부해야 할지를 두고 골머리를 앓는다. 당초 지급 기준이던 소득 하위 70%에 속하지 않았던 이들의 고민이 깊다.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자는 더불어민주당 취지대로라면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발목을 잡는다.
일단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 사이에서는 기부하는 게 마음 편하다는 인식이 주류다. 4일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최소한 우리는 안 받아야 되지 싶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제부처의 국장급 관계자도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청 개시일부터 3개월 이내에 신청하지 않으면 ‘자발적 기부’로 간주한다. 신청을 안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기부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과장급 이하 공무원들이라고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정부가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소득 하위 70%에게만 지급한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다고 한다. 맞벌이의 경우 대부분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모든 공무원이 지급 대상에 포함되니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았다가 자칫 기부금 소득세액공제를 안 받은 이로 ‘낙인’ 찍히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한다. 경제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개인정보라 세액공제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괜히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공무원들이 기부를 놓고 고민하는 분위기는 ‘관제 기부’ 논란에 선을 긋던 여당의 뜻과 동떨어져 보인다. 실제 여당 내에서도 고위공직자는 기부에 동참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인식이 팽배하다. 한 여당 관계자는 “하위직 공무원에게 강제하지는 못해도 고위공무원은 반납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귀띔했다. 공무원에 대한 ‘무언의 압박’은 사회적으로 ‘자발적 반납’을 권장하려는 의도에도 생채기를 낼 수 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기부에 대해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