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교회여, 응답하라

입력 2020-05-05 00:04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유튜브 채널에서 ‘어제보다 더 좋은 나’라는 제목으로 매주 책 소개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엔 ‘반대’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책을 소개했다. 반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반대 의견을 잘 수렴할 때 집단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찾는 이가 적어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 7:13~14)는 말씀처럼 수(數)의 논리가 아닌, 진리를 따르는 일이 중요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필요한 통찰이라 여겨 소개했다.

그랬더니 반대 의견을 가장 수용 안 하는 곳인 기독교에서 이런 책을 소개한다는 게 묘하다는 반응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 작성자의 눈에 비친 교회는 권위주의와 복종만 있는 곳이었나 보다. 그건 오해와 편견이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권위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참다운 권위의 빛을 가리고 진리를 향해서만 사용할 수 있는 순종이란 말을 오용해 복종을 강요하는 사례가 교회 안에서 얼마나 빈번한가. 형식은 댓글이었지만, 교회를 향한 질문이었다. “교회는 소통과 대화가 가능한 곳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교 집단의 실체가 언론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교리상의 오류와 교주의 신격화가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그 해악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만천하에 폭로됐다. 그런데 교회 밖 사람들은 ‘그래서 뭘’이라는 반응이다. 기독교인과 교회의 문화가 이단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이기적이고 미성숙하며 이웃과 지역 사회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게 아니라 건물의 확장과 양적 성장을 부흥이라 부르는 모습이 이단과 어떤 면에서 차별점을 갖는지 되묻는 질문이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내부적으로는 ‘그래도 교회에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 하는 소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또 너야’라는, 마치 문제아를 바라보는 양 기독교에 대한 혐오 발언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이제는 이단이 아니면 괜찮다는 감별만으로는 안 된다.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교회는 이단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예배도 마찬가지다. 두 달간 많은 교회가 온라인으로 주일예배를 드렸다. 코로나19 이전, 교회의 주일 풍경은 비슷했다. 정해진 시간 예배당에 나와 공동 예배에 참여하고 봉사하며 친교를 나눴다. 그런데 이 패턴을 신앙생활의 전부로 알던 성도들에게 온라인 예배도 불완전하지만, 또 하나의 주일성수가 될 수 있다고 공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존에 알던 패턴과 다른 형태로도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교회가 공인한 셈이다.

당장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생활방역으로 바뀌면서 기존처럼 예배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원래의 자리로 대부분 돌아갈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은 마음에 남긴 채 말이다. “지난 두 달처럼 앞으로도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되나요.”

이제 교회는 답해야 한다. 그동안 성장을 위해 달려오느라 미처 답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교회 안팎에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부수적인 것들이라 여기며 뒤로 미뤘던 질문들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응시하며 물어볼 것이다. 이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이며 질문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변화의 문 앞에 성큼 다가섰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질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알게 될 것이다. 답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응답하려는 의지와 대화를 계속 이어가려는 태도인 것을. 질문하는 쪽도, 응답하는 쪽도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선 자신의 자리에서 나와 서로를 향해 다가갈 수밖에 없다. 가까워지면 이전과 달리 보인다. 서로의 온기와 숨결을 느끼며 살아있는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그렇게 찾아오는 법이다.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