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이질적인 것들과 연결하라

입력 2020-05-05 04:02

미국 시카고대 로널드 버트 교수는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s)이 많은 조직이나 사람일수록 성과가 높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연구해 이론화한 학자다. ‘구조적 공백’이란 사회적 네트워크상에서 직접 연결되지 않은 이질적인 집단을 서로 연결하는 사람이나 위치를 말한다.

버트 교수는 1990년대 미국 금융기업과 프랑스 제약회사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누가 승진을 빨리 하는가’ ‘누가 보너스를 많이 받는가’ ‘누가 좋은 평가를 받는가’를 조사했다. 그 결과 특정 그룹 내에서만 강한 유대감을 가진 사람들보다 특정 그룹 내 유대감은 약하지만 여러 그룹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승진도 빠르고, 보너스도 많이 받고, 평가도 좋았다. 자기가 속한 조직이나 부서에만 충성하고 다른 조직이나 부서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은 성과가 좋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드라마를 보면 승진 등에서 밀린 뒤 “내가 조직에 얼마나 충성했는데 이럴 수가…”라고 분노하는 인물이 가끔 등장하는데, 이런 한탄에도 나름 이론적 배경이 있는 셈이다. 이질적인 집단과의 교류, 달리 말하면 다양한 관점과 정보의 획득에 실패하면 성과가 좋을 수 없다.

‘이질적인 그룹 간의 연결점이 많은 조직이나 사람일수록 높은 성과를 낸다’는 버트 교수의 이론은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황교안 대표가 이끌었던 미래통합당이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다양한 그룹들을 연결하려는 노력 대신 일부 우파와 집중적으로 교류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통합당은 ‘구조적 공백’이 약한 조직이었다. 위기 때마다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구원투수로 거론됐는데, 연결의 개념으로 살펴보면 일부 이해가 간다. 김 전 위원장은 민정당에서 출발해 한나라당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을 거쳐 통합당 총선을 지휘했고, 통합당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된다. 철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질적이고 다양한 정치 그룹들과 교류한 정치적 연결자이자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지켰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이낙연 전 총리의 과제도 엿보인다. 영남 지역이다. 호남 출신으로 전남도지사를 지냈던 이 전 총리는 여권 내부에서 ‘지역적 한계가 있다’는 정치적 평가를 많이 받는다. 도식적인 이야기지만, 이 전 총리가 영남을 대표하는 그룹들과 더 많이 연결될 수 있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 통합당 김세연 의원이 주목받는 것은 40대, 기업인, 합리적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 기존 통합당 이미지와 다른 그룹들과 연결될 수 있는 잠재성이다. 다만 40대와 연결, 기업인과 연결, 중도층과 연결 중 김 의원이 실제로 보여준 게 없다. 아직은 심각하게 고려할 변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질적인 집단, 다양한 집단과의 연결은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도 생각해볼 만한 주제다. 문재인정부는 집권 초 이명박·박근혜정부가 실패했던 북한과의 연결에 성공함으로써 임기 초반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대한민국에 가장 이질적인 집단인 북한과의 연결은 성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조금 빛이 바랬지만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결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했다. 문재인정부가 남은 2년 동안 성과를 내려면 이런 연결의 구조가 국가 운영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 야당과의 연결, 보수층과의 연결, 검찰·언론과의 연결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특정 세력의 논리만 강화하고, 다른 집단과의 연결을 배척한다면 남은 2년의 성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할수록 강한 연대보다는 느슨하고 다양한 연대가 중요하다.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