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국가의 존재가치를 드러낼 때

입력 2020-05-05 04:05

얼마 전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전망은 충격적이었다. 세계 대공황에 견주어 세계 대봉쇄(Great Lockdown)로 명명된 올해 IMF가 전망한 각국의 성장률은 미국 -5.9%, 유로 -7.5%, 일본 -5.2%, 한국 -1.2%로 온통 마이너스였다. 세계경제성장률은 -3%로 전망했는데 그나마 2분기 중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근거한 것이다. 금번 사태가 곧 진정될 가능성보다는 2차 확산 우려 목소리가 높다는 점에서 이마저도 희망적인 수치일 수 있다.

코로나 충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시장은 눈이 의심되는 통계를 쏟아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3월 중순부터 매주 수백만명씩 실직하면서 지난 6주 동안 실업자가 된 사람이 30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10년여간 꾸준히 늘려온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프랑스는 민간경제 종사자의 절반인 1000만명이 사실상 해고 상태라고 밝혔다. 앞으로도 실업자 대열에 동참할 사람이 계속 늘어날 것임에 따라 세계 경제가 현재 생명만 유지하는 마취 상태에 있다는 분석에 공감이 간다.

우리 경제도 예외일 수 없다. 올 1분기 우리 경제는 전기 대비 -1.4% 성장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였지만 유례없는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나름 선방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세계 주요국의 봉쇄 조치와 수요 급감 영향이 수출 감소를 통해 우리 경제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3월만 하더라도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0.7% 감소에 그쳤으나 4월에는 감소폭이 -24%로 크게 확대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수출의존형인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이 경우 앞으로 우리 노동시장 상황이 미국과 프랑스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기는 어렵다. 수출이 그나마 버텨주었음에도 지난 3월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에 비해 19만5000명이나 줄었으며 일시휴직자는 126만명이나 증가한 161만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바이러스 확산 여파로 직접적 타격을 입은 서비스업과 임시근로자를 중심으로 많은 일자리가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수출 여건이 부진하면 수출에 의존하는 제조 업체, 수출 관련 서비스 업체 등에서 일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의 수입과 일자리가 위협받게 된다. 이미 실직한 사람들의 일자리 찾기가 더욱 어려워짐은 물론이다. 만일 IMF 전망대로 올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이라도 한다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등 취약 부문에서 감당해야 할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미래 상황이 불확실하다고 정책마저 불확실하다면 악순환에 빠져들 뿐이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과감하고 선제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댐에 물을 저장하는 이유는 가뭄이 왔을 때 활용하기 위함이다. 댐을 어느 정도 열어야 할지, 마른 논에 얼마나 물을 공급해야 할지 등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많은 논은 회복이 어려운 상태가 되고 있다. 물을 다시 저장하고 효율적인 배수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은 시간을 두고 풀어가야 할 과제다. 세계는 전례없는 위기를 맞아 기존 경제학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과감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은 혹시 모를 부작용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다. 수입을 잃은 가구의 생계와 기업의 고용 유지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직장이나 소득을 잃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국가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음을 보여주고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의 존재가치를 드러낼 때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