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 VS 85㏊’ 강원 고성 산불, 1년만에 확 달라졌다

입력 2020-05-04 00:24 수정 2020-05-04 00:25
지난 1일 오후 8시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에서 발생한 산불로 일대 85㏊의 산림이 소실됐다. 사진은 화재로 검게 타버린 산림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4월 4일 오후 7시17분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의 도로 변압기에서 튄 불꽃은 곧바로 인근 산으로 옮겨붙었다. 자그마한 불씨는 초속 35m의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고성군과 속초시 일대를 집어삼켰다. 화재로 2명이 숨지고, 1100여명의 주민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1년여 만에 같은 곳에서 똑같은 형태의 산불이 났다. 시기와 장소, 강한 바람 등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지만 피해규모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지난 1일 오후 8시10분쯤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의 한 주택 화목보일러에서 시작된 불은 대형 산불로 이어졌다. 바람이 거센 데다 날이 어두워 산림·소방 당국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밤새워 저지선을 구축했고,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냈다. 다음날 오전 5시28분 일출과 동시에 헬기와 인력을 현장에 대거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3시간 뒤인 오전 8시쯤 주불 진화를 마쳤다.

이번 산불은 지난해 발생한 고성 속초 산불과 닮은꼴이다. 두 산불은 행정구역상 모두 토성면으로, 발생지점이 불과 7㎞ 떨어져 있다.

그러나 인명 피해에선 차이가 났다. 지난해엔 2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민가 피해는 584가구 이재민은 1139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산불은 주택 1채 등 시설물 6개 동만 태웠고, 인명피해는 없다. 피해면적도 지난해에는 1227㏊로 올해 85㏊보다 무려 14배나 넓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산림·소방 당국의 진화 집중력과 신속한 대응이다. 불이 나자 소방 당국은 즉각 전국 소방 동원령을 내렸고, 산림청은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조기 격상했다. 전국의 소방력과 진화헬기가 동원돼 광범위한 저지선을 신속하게 구축했다. 박종호 산림청장은 “이번 산불은 공중진화대와 특수진화대, 최일선에 투입된 소방청의 화선 차단작전이 주효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당국은 화재 발생 50여분 뒤인 1일 오후 8시53분쯤 발화지점에서 3.2㎞가량 떨어진 도학초교와 도원리, 학야리 야산 등 3곳에 저지선을 구축했다. 이곳에서 소방차 28대와 소방 진화대원 82명이 강풍에 맞서 밤새 화마(火魔)와 사투를 벌였다. 그 사이 주민 580여명과 군 장병 1800여명이 경동대와 아야진초교 등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고성·속초뿐 아니라 인근 인제와 강릉, 동해안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던 지난해 산불과 달리 올해는 고성에서만 일어난 것도 큰 힘이 됐다. 소방 장비와 인력을 집중 투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의 경험을 교훈 삼아 소방 당국과 지자체, 주민들이 산불의 불씨가 되는 원인들을 차단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다.

이번 산불엔 지난해보다 절반에 가까운 5134명만 동원됐다. 지난해엔 무려 1만671명이 투입됐다. 반면 장비는 헬기 39대, 소방차 462대로 지난해(헬기 18대, 소방차 116대)를 압도했다. 사람보다 시스템, 첨단장비에 의한 효과적 화재 진압이 이뤄진 셈이다.

물론 바람의 세기도 큰 작용을 했다. 이번 산불은 발생 초기 초속 6m 안팎의 바람이 불다가 19m까지 강해졌다. 그러다가 다음 날 오전 6m 안팎으로 다소 잠잠해졌다. 지난해에는 최대순간풍속이 속초 설악동 초속 25.8m, 설악산 28.7m, 미시령 35.6m였다. 초속 35m는 나무가 뿌리째 뽑힐 수 있는 수준의 바람세기다.

고성=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