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몰락… 코로나 덮친 유도계 한숨

입력 2020-05-04 04:07
왕기춘이 유도 국가대표였던 2015년 8월 5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을 위해 훈련하고 있다. 왕기춘은 이듬해 올림픽 본선행이 좌절되자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뉴시스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왕기춘(32)씨는 현역 선수 시절 폭행 사건이나 부적절한 발언으로 수차례 논란을 자초했다. 이제 성범죄자 낙인까지 찍히며 몰락의 길로 들어설 위기에 놓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위축된 유도계는 한목소리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왕씨는 대구지방경찰청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3일 “구속영장이 지난 1일에 적법한 절차로 발부됐다.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돼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왕씨는 2008 베이징올림픽 유도 남자 73㎏급 은메달리스트다. 그해 전후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쓸어 담아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올라섰다. 그는 올림픽 경기는 유독 ‘투혼’으로 묘사될 만큼 치열했다.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에서 갈비뼈가 부러진 고통을 참고 결승에 진출했고, 메달 획득이 좌절된 2012 런던올림픽 같은 체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가슴에 상처를 입고 출혈을 일으키면서도 승부에 임했다.

하지만 장외의 삶은 달랐다. 왕씨는 2009년 경기도 용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20대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당시 그는 “함께 술을 마시던 일행과 시비가 붙었고, 이를 막으려 쫓아온 여성에게 다짜고짜 욕을 하며 뺨을 때렸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그는 2013년 12월 충남 논산 육군 훈련소에 입소하면서 몰래 반입한 휴대전화를 들켜 8일간 영창 처분을 받았다. 모교인 용인대 유도부의 체벌이 인터넷상에서 공론화됐던 2014년 5월 페이스북에 “후배가 맞으면 분명히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적어 비판 여론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8년 광복절(8월 15일)에는 “태극기를 거꾸로 달면 MB가 된다. 실수하지 말라”고 적었다. 그해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 경기를 관전하면서 태극기를 거꾸로 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한 글이지만, 국가대표의 정치적 발언은 올림픽 헌장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왕씨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본선행이 좌절되자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그 이후로 유튜브 방송을 운영하고,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한 유도관 프랜차이즈를 전국 6곳에 확장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약 1만6500명이다. 현재 유튜브를 제외하고 페이스북을 포함한 모든 SNS 계정은 폐쇄됐다.

유도계의 한숨은 길어졌다. 생활체육이 활성화된 유도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체육관의 경영난이 간판선수의 구속수사로 악재를 더하게 됐다.

강동영 대한유도회 사무처장은 “왕씨는 선수 시절 돌발 행동을 자주 했다. 은퇴하고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또 사건을 일으켰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장기 휴업을 극복하고 회생을 시작한 유도 체육관들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오 이동환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