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개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서울 한남동 자택(1245.1㎡) 공시가는 408억5000만원이었다. 전국 단독주택 중 가장 비쌌다. 이 회장은 자산이 141억 달러(17조2000억원)로 한국 최고 부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가장 좋은 집에 사시네.” 비싼 집이 곧 좋은 집이란 생각이다. 부동산 투자 광풍의 시대를 건너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집을 투자물로 보면 좋은 집의 1순위 기준은 가격이 될 수 있다. 시가가 급등했거나 고가인 주택을 좋은 집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비싼 집이 정말 좋은 집인가. 기자는 집을 그 고유한 가치나 기능과 관련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잘살 수 있는 곳이 좋은 집이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는 장소다.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다.
이런 기준에서 최근 만난 지인의 이웃은 좋은 집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웃은 지인의 아파트 바로 아래층에 사는 부부다. 딸 셋을 키우는 이들은 매 학기 인근 대학으로 유학 온 외국인에게 방 1칸을 내준다. 거래는 간단하다. 부부는 숙식을 제공하고, 외국인들은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하면서 일정 시간 놀아주는 게 다다. 넓은 집에 살아서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방 3개짜리 아파트니까 부부가 하나, 자녀들이 하나, 유학생이 하나를 쓴다. 아이들은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만나며 다른 나라의 언어,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기회를 자연스럽게 얻는다. 유학생들은 그 가정에서 가족의 정을 느끼고 한국의 문화를 가깝게 체험할 것이다. 가족이 이방인을 환영하고 아이들이 사랑을 배우는 이런 집이 좋은 집이다.
여기서 자란 아이들은 포용력이 있고 마음이 따듯한 어른이 될 가능성도 크다. 미국 조지아주 출신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 기억이다. 남부 흑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북부 도시로 대거 이주할 때다. 도망치듯 북부로 향하던 흑인들이 유독 카터의 집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한번은 카터의 어머니가 방문자에게 “우리집에 어떻게 오게 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흑인이 대문 앞에 한 표시를 보여줬다. 흑인들은 갑자기 문을 두드려도 기꺼이 잠자리를 내주던 카터의 집에 자기들만의 표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터의 어머니는 흑인들을 항상 따듯하게 맞았고 카터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카터는 퇴임 후 국제 분쟁 조정과 인권운동을 한 공로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84년부터 가난한 사람에게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운동을 하고 있다. 카터가 구순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해비타트 활동을 하는 것은 낯선 이를 환대하는 좋은 집에서 자랐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사랑과 환대가 있는 집이 좋은 집이다. 몇 해 전 이런 기준이 별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일본의 유명 디자인 회사 악투스 직원 123명의 집을 촬영하고 그들을 인터뷰한 책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이상적인 집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인테리어 전문가들이니 언덕 위에 하얀집 등과 같은 외관을 모두 제시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상당수가 ‘사람이 모이는 집’ ‘파티를 자주 하는 집’ 등이라고 답했다.
편히 쉬고 즐거움을 나누는 공간을 좋은 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좋은 집의 가장 큰 구성 요소는 사람이다. 그 집에 사는 사람과 이 집을 방문하거나 머문 사람들의 추억과 우정이 좋은 집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이다. 가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듯 좋은 집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강주화 산업부 차장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