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는 12년 전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냉동창고 화재의 복사판이다. 2008년 1월 7일 이천 호법면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불이 나 40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했다. 우레탄폼 작업을 하면서 발생한 유증기가 용접 불꽃과 만나 폭발하며 화재가 발생했고 벽체로 시공된 샌드위치 패널이 타면서 다량의 유독가스가 확산돼 대형 참사로 번진 사고였다. 소방, 국립과학수사원 등 7개 정부 기관의 합동감식과 검경 수사로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겠지만 목격자 등의 증언으로 미뤄보면 이번 화재는 당시 사고의 판박이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0일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범정부TF(태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했다. TF는 다시는 이런 화재가 없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들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부질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이후 여러 대형 화재를 겪으면서 정부가 여러 차례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번 화재를 보면 시늉에 그쳤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2년 전 사고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이번에도 반복된 것은 과거 대책들에 중대한 허점이 있다는 걸 방증한다. 물류창고 공사 자재로 쓰이는 스티로폼 내장 샌드위치 패널과 우레탄폼은 불이 붙을 경우 짧은 시간에 다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레탄폼 작업은 유증기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불꽃이 튈 수 있는 작업과 동시에 해서는 안 되는데도 이런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가연성 물질이 산재해 있는데도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하다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산업안전공단이 서류 심사와 현장 확인을 통해 여러 차례 화재 위험성을 경고하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 시공업체나 현장 작업자의 안전불감증도 문제지만 개선 지시를 계속 무시하는데도 공사 일시 중단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공단도 ‘면피행정’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번에도 미봉책이 되지 않으려면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대형 참사의 주범이라고 누차 거론되는데도 업체들이 가연성 자재를 계속 사용하고, 위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결국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안전을 지키려면 그만큼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안전을 소홀히 하면 훨씬 더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이런 공감대가 바탕이 돼야 그나마 실효성 있는 대책을 기대할 수 있다.
[사설] 숱한 화재종합대책 무용지물… 미봉책은 이제 그만
입력 2020-05-0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