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오른쪽 팔 전체에 큰 점이 있어서 짧은 소매 옷도 입지 못하며 늘 주눅 들어 살았지만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며 알뜰하게 돈을 모았다. 그러다 산악회에서 성실하고 착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너무 말이 없어서 데이트를 할 때도 항상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그만 만나자고 했더니 착한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다. ‘그래, 표현은 조금 부족하지만 착하고 성실하니 문제는 없겠지’ 하며 결혼했다.
그런데 워낙 내성적인 남편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직장이 힘들다며 자주 그만두더니 운전이 적성에 맞는다며 식자재 배달 차, 사장님 기사, 학원버스, 탱크로리 유조차, 코일 운반차, 대형 트레일러까지 다양한 차를 운전했다. 게다가 가정에도 무심해 두 아이 모두 혼자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고 퇴원했다.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지자 어쩔 수 없이 다시 직장에 나갔는데 뜻하지 않게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둘째의 담임은 아이가 학습장애가 있는 것 같다며 정신과 상담을 권유했다.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지도, 눈을 맞추지도 못하고 4학년까지 한글도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무너졌다.
돌파구를 찾아 어릴 때 어머니와 다닌 성당에 갔다. 평생을 다닌 자매가 ‘기도는 누구에게 하고,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못하고 성경은 아예 펼치지도 않아 의아해할 때 같은 아파트에 한마음교회에 다니는 어느 언니가 ‘힘든 삶이 교회에서 해결됐다’는 말에 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 첫 예배에서 ‘어떻게 저렇게 밝고 기쁠 수 있지?’ 충격을 받은 나는 열심히 모임에 참가했다. 예수님은 역사적 인물인 4대 성인 중 한 분으로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풀리지 않는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말씀이 명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다는 것이 구약에 예언돼 있었고, 그 예언대로 이뤄졌다는 것과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부활사건은 내 마음에 있던 ‘설마?’를 ‘실제’가 되게 했고 부활은 믿을 수밖에 없는 확실한 증거였음을 성령께서 비춰주셨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주인 돼 세상 욕심을 채우려고 허우적거리며 살았던 악한 모습이 비춰지는 순간 바로 엎드려 내가 주인 되었던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눈이 새롭게 열리며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마음부터 달라졌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고 아이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꽝’이라는 생각에 복음부터 전했다. 우리 교회 어느 자매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내 동생이란 생각에 바로 간병을 자원했다. 음식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간병이 쉽지는 않았지만 함께 기뻐하고 함께 기도하며 영원한 공동체의 기쁨을 매일 실감했다.
남편도 예수님을 만나 든든한 믿음의 동역자가 됐다. 지금도 여전히 말은 없지만 마음이 하나된 가정은 너무 화목하다. 직장을 1년도 채 못 다니고 이직하기를 밥 먹듯 했던 남편이 관광버스 회사에 다닌지 5년이 넘어가고 있고 둘째 아들은 대학을 휴학하고 군 복무 중이다. 그 당시에는 힘들었던 모든 것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주님이 모든 것을 하셨다는 생각뿐이다. 남편을 원망하며 평생을 보낼 뻔했던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남편과 함께 주를 위해 달려가게 해 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이금주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