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난지원금 기부, 관제 논란으로 얼룩져선 안 돼

입력 2020-05-01 04:02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과 관련 법안이 30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각 가정은 오는 11일부터 지급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지원금을 받지 않고 기부하는 길도 열렸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실물 경제와 가계가 받은 충격이 유례없이 커짐에 따라 소득 및 생계 보장, 소비 진작을 위해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코로나19 사태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안정된 소득자나 부유층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기부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여당 총선 당선자 등은 벌써 지원금 기부를 약속하고 있다. 1호 기부자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회지도층이 기부에 앞장서는 것은 공동체를 위해 바람직하다. 하지만 관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재난지원금에 대해 “당연히 난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공무원들 기부는 자유”라고 밝히자 공직 사회 일각에선 기부를 강제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자발적 기부가 결국 재계의 기부를 압박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여당 내부에서 코로나 사태로 이익을 본 기업이 손해 본 분야에 이익을 나누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관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기부는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를 재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참여를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재정 부담을 완화하든, 더 긴요한 곳에 재정이 쓰이도록 자기 몫을 포기하건 자율에 맡겨야 한다. 기부를 반강제적 의무로 느끼게 몰아가는 일은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빛을 발했던 자발적 시민 정신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계층 갈등을 유발해 공동체 의식을 저해할 수도 있다.

3개월 이내 재난지원금 신청이 없을 경우 기부로 간주하는 ‘의제 기부금’도 국민의 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기부 의사가 없는데도 절차를 몰랐거나 특별한 사정으로 신청하지 못한 경우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난지원금 안내 절차를 강화하고 가능하면 기부 의사를 일일이 확인하는 성의 있는 행정을 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