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공의의 공효는 화평이다

입력 2020-05-01 04:05

21대 총선은 여권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다. 국회의원 의석 300석 중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180석을 얻었고, 친여 성향의 열린민주당이 3석, 정의당이 6석, 무소속이 1석을 얻어 범진보가 190석을 획득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103석, 국민의당이 3석, 무소속이 4석을 얻어 범보수는 110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정치지형이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호남에선 전체 의석 28석 중 더불어민주당이 27석을, 범여권 무소속이 1석을 획득했고, 대구·경북에선 전체 의석 25석 가운데 미래통합당이 24석, 범야권 무소속이 1석을 얻었다.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미래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2석씩 얻었는데, 21대 총선에선 이들 지역에서 의석을 얻는 데 실패했다. 해소돼 가던 지역주의가 되살아난 것이다. 또 이번 선거는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반영된 투표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이 타인을 지배하도록 정해질 때, 모든 것이 결합해 정의감과 이성을 빼앗아 간다’고 했다. 절제되지 않은 권력은 정의감과 이성을 마비시키고 겸손의 미덕을 훼손할 수 있다. 여당은 중앙 및 지방의 행정 권력을 장악했고, 사법부의 주요 보직은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들로 구성됐다. 이제 입법 권력도 여당이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 정부와 여당은 정책 결과에 대해 남 탓을 할 수 없게 됐다. 국가 미래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권력에 취해 불의와 반이성적 정책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자신들뿐 아니라 대한민국과 그 구성원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틀 안에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간다. 민주주의는 절대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가치상대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다른 의견을 존중한다. 다원주의적 가치관을 전제로 자율적 이성을 존중하고 정치적 절차를 통해 합리적 국가의사를 형성한다. 공동체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투명한 절차와 소통을 통해 민주적으로 조율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수결 원리에 입각하면서도 소수자 의견을 경청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통합된 국가의사를 형성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지역과 세대, 이념과 계층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국가 정책이나 의사가 특정 이념이나 당리당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가치와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또 다가오는 국가 위기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품과 능력을 갖춘 모든 사람에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슈어드, 체이스, 베이츠 등 공화당 내 경쟁자들과 스탠턴, 웰스, 블레어 등 민주당 인사들로 내각을 구성했다. 당대 최고 실력자들로 내각을 꾸린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분열을 막고 노예 해방이라는 인류사적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다. 세종대왕은 관노였던 장영실에게 종3품 벼슬을 주는 등 신분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인재를 중용했다. 한글 창제와 당대 세계 최고의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당 태종은 정적이던 태자 이건성을 따르던 위징과 왕규를 자신의 핵심 참모로 기용해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이룰 수 있었다.

정부와 여당은 관용의 정신에 입각해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소통하면서 절제된 국가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해야 한다. 이러한 권력 행사는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와 국민의 안전을 제고해 사회 통합과 국가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이사야 32장 16, 17절).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