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서 발생한 물류창고 화재는 29일 오후 1시30분쯤 폭발음과 함께 시작됐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층에서 지상층으로 불길이 올라왔고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4층짜리 창고 건물은 이미 골조와 외관은 완성됐고, 내부시설 설치와 단열재 시공 등이 이뤄지고 있었다. 화재 발생 당시 공사 현장에는 78명의 근로자가 동원돼 동시 작업이 진행됐다. 지하에서는 외벽에 우레탄폼을 뿌리는 동시에 지하층과 지상층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도 이뤄지고 있었다.
밀폐공간 유증기 폭발
우레탄폼은 100% 석유를 가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액체 상태에서 외벽에 뿌리면 빠르게 굳어 단열재 역할을 한다. 인화성이 매우 높고, 액체 상태에선 공기 중에 다량의 유증기를 분비한다. 따라서 현장에 불씨가 될 만한 작업이나 물건은 철저하게 배제한 채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공사 현장에선 이 같은 안전조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지하 2층 화물용 엘리베이터 부근에서 우레탄폼 발포 작업과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엘리베이터 설치과정에서 나온 불씨가 유증기를 폭발시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발화 원인이 된 불씨가 무엇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화재분석 전문가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먼저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 중 용접 등이 이뤄졌다면 용접기에서 튄 불씨가 우레탄폼에 옮겨붙었거나 공기 중의 유증기를 폭발시켰을 수 있다. 용접 불씨는 주변으로 빠른 시간에 튀어나간다. 이 불씨가 우레탄폼에 닿으면 곧바로 벽면 전체로 번지게 된다.
우레탄폼을 뿌릴 때 공기 중에 배출된 유증기가 지하라는 밀폐된 공간에 축적돼 있다가 용접기를 켜는 순간 폭발과 함께 화재가 일어났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용접 작업에는 반드시 용접용 LPG통이 있었던 만큼 이 가스통이 폭발하면서 굉음을 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소방 당국과 경찰은 이런 가능성에 대해 전부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화재보다 폭발음이 먼저 들렸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우레탄폼에 불이 먼저 붙었다기보다는 용접 불씨가 지하에 쌓인 유증기를 폭발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불이 먼저 나고 불에 의해 용접용 LPG통이 폭발했다면 지상으로 불길이 먼저 올라오고 폭발음이 들려야 하는데, 이번 화재는 폭발음이 먼저 나고 불길이 번졌기 때문이다.
아비규환 화재 현장
불길은 5시간여 만에 겨우 잡혔다. 물류창고는 지상 4층, 지하 2층, 연면적 1만932㎢로 워낙 규모가 커 소방 당국은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겨우 불길을 잡고 생존자 구조를 위해 지하로 진입한 구조대 앞에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펼쳐졌다.
화재로 심하게 훼손된 시신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불길이 얼마나 빠르게 번졌는지, 폭발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화재 발생 직후 폭발적인 연소, 엄청난 유해가스가 발생해 근로자들은 아예 탈출시간을 상실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물류창고는 불이 거의 다 진화됐음에도 메케한 유독가스 냄새가 진동했다. 건물 외벽은 거의 다 불에 그을려 서커멓게 변했고, 일부는 불에 녹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지상층 공사 현장에 있던 생존 근로자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불이 났고, 시작되자마자 엄청나게 불길이 커져 지하에 있던 동료들은 거의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하보다 지상층에서 더 많은 사망자들이 나왔다. 지상 2층에서 18명, 지상 1·3·4층과 지하 1·2층에서 각 4명의 희생자가 수습됐다. 유독 지상 2층에 사망자가 많았던 이유는 이곳에서 작업하던 근로자가 많았던 데다 순식간에 위로 올라간 유독가스에 질식됐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영민 비서실장 등을 관저로 불러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은 “유사한 사고가 반복돼 유감스럽다. 과거의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필요하면 유전자 감식인원을 늘려서라도 사망자 신원 확인을 최대한 서둘러 달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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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강희청 송경모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