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나는 전가의 보도… ‘케인스식 부양책’ 코로나도 통할까

입력 2020-04-30 04:01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주요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쏟아붓고 있는 재정대책은 이른바 케인스식 부양책이다.

수요를 진작시키면 생산이 늘어나 고용이 증가하고 다시 소비가 늘어나는 선순환을 겨냥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논란 끝에 2차 추경을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구당 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한 것이나 미국이나 유럽국가 등이 기업의 도산을 막고 직원 해고를 방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퍼주고 있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이달 초까지 동원한 재정부양책 규모는 8조 달러가량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5%나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 경제가 3%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한 점을 감안하면 재정 투입 규모가 천문학적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를 포함해 위기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케인스식 부양책이 이번에는 자칫하면 재정만 낭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관심을 끈다.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가 최근 펴낸 ‘팬데믹 정책의 사회경제학(The socioeconomics of pandemics policy)’ 보고서는 코로나19가 몰고온 상황을 ‘경제불일치사태(Great Economic Mismatch)’로 규정하고 단기-중기-장기로 나눠 경제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고서는 대규모 재정을 동원한 케인스식 경기부양책은 향후 몇 주 동안 급한 불을 끌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일반적인 경기 후퇴 상황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경제 미스매치 상황에서는 향후 몇 개월 후에는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데다 연말까지 2차 유행이 우려되는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는 한 케인스식 부양책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과일을 예로 들어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물리적 접촉’과 ‘물리적 거리두기’로 분류해 경제적 미스매치가 왜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현지 과일 수확과 수송은 물리적 거리두기를 통한 경제 행위인 반면 과일 포장부터 요리와 식당 서비스는 물리적 접촉이 수반된다. 따라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과일 포장 공장과 식당이 문을 닫게 되면 현지 과일 수확과 수송도 중단되게 된다. 보고서는 전통적인 공급사슬에서 작동하는 케인스식 부양책은 가계가 과일을 구입할 돈을 지원받더라도 생산 유발효과를 볼 수 없게 되고 결국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로 이어지길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통적인 공급방식이 언택트(Untact·비대면) 즉, 로봇 패킹, 가정배달 서비스로 변화하고 있지만 수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에 적응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직원 재배치와 교육을 하는 데 일반 경제주체들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보고서는 결국 새로운 공급체계 구축을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이른 시일 내에 단행되지 않을 경우 천문학적인 정부 지출이 낭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욱 문제는 재정 낭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정 적자가 세계 경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IMF는 올해 세계의 GDP 대비 재정적자비율을 9.9%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3.7%의 2배를 웃도는 수준으로 코로나19 대책을 위해 각국이 앞다퉈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경기 위축으로 세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보고서 저자인 데니스 스노어 글로벌솔루션 이니셔티브 회장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병행하는 재정투입 정책 대신 경제 미스매치를 시정하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재적응 정책(Readaptation Policy)’을 제시했다.

그는 영국이나 미국 등을 예로 들어 현재 근로자들이 무급휴가나 실업으로 받는 수당을 비대면 분야 취업과 훈련용 크레디트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하는 ‘수당 이전 프로그램(Benefit Transfer Program)’을 제시했다. 또 소상공인에게 직원 고용유지를 조건으로 제공하는 PPP(paycheck protection program)의 경우에도 비대면 분야 시설 투자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