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전문가의 권위와 타락

입력 2020-04-30 04:02

인터넷 발달 등에 따른 정보 과잉의 시대가 초래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전문가의 위기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러시아 문제 전문가 톰 니콜스는 세계적으로 호평받은 저서 ‘전문가와 강적들: 나도 너만큼 알아’에서 전문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의 위기에 대해 일찌감치 경고한 바 있다.

니콜스에 따르면 전문가란 특정 기술과 지식을 습득한 뒤 그 기술과 지식을 사용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당연히 전문가는 특정 분야에 대해 조언이나 교육을 하고, 해결책을 내는 입장이 된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은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됐고, 일부는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전문가로 여기기도 한다. 정보의 근거나 출처, 공신력은 간과된 채 말이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대중은 전문가에 대한 오랜 불신 탓에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전문가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난 또는 공격한다. 그 영향으로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문가는 비판이나 손해를 우려해 타협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최악의 경우엔 대중이나 권력에 영합해 타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 속에서 한국이 선방한 이유가 여럿 있지만 전문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원래 자문을 해주지만 최종적인 정책 결정권은 유권자들이 투표로 선출한 정치인들에게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국 정치인들이 그나마 잘한 부분은 전문가 집단이 이끄는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제대로 기능하게끔 만든 것이다. 예방의학 전문가인 정은경 본부장이 이끄는 질본은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세계의 표준이 될 정도로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평소 인터넷에서 다양한 의학 정보를 얻으며 의료계를 신뢰하지 않던 대중도 코로나 사태에서는 질본을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정 본부장은 전문가의 권위를 새삼 깨닫게 해준 인물이다.

한국과 비교할 때 일본은 전문가가 제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가 회의를 종종 개최했지만 도쿄올림픽 연기 문제 등 정치적 판단을 우선시하느라 전문가들의 제언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코로나19 발병과 확산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내놓지 않으면서 대응이 늦어졌다는 지적도 많다.

일본 출신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선임고문인 시부야 겐지는 최근 일본 주간지 ‘아에라’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이 정치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면서 일본 정부의 전문가 회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전문가 회의는 이달 초에도 일본의사협회의 성명이 나올 정도로 긴급사태 선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입장에 보조를 맞추기 급급했다. 결국 긴급사태 선언이 약 일주일 뒤로 늦춰지면서 일본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감염 폭발로 이어지게 됐다.

전문가로서 제 역할을 못한 것은 일본 정부의 전문가 회의만이 아니다. TV에서 해설자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의사 등 일부 의료 전문가들은 아예 일본 국민을 코로나19의 위험에 빠뜨린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한국처럼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많이 하면 의료 붕괴가 올 뿐만 아니라 드라이브스루 검사 방식이 감염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혐한을 앞세워 지지율을 올리는 일본 정치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과학에 근거해 발언해야 할 이들 의료 전문가의 어이없는 모습은 전문가의 타락이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