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스마트폰 두 주력 부문이 동반 부진을 겪던 지난해 일본이 수출 규제 ‘도발’을 단행했을 때도, 올해 초 코로나19 여파로 생산라인이 멈춰섰을 때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현장을 찾았다.
이 부회장은 2018년 5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동일인 변경(이건희→이재용)으로 공식적으로 삼성 총수에 오른 후 한 달에 한 번 이상 국내외 생산과 연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연구소와 브라질 마나우스, 2월 극자외선(EUV) 전용 반도체 생산설비, 3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수원 삼성종합기술원 등을 방문했다. 그는 지난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을 방문해 스마트폰 생산공장을 점검하고 직원들과 차담회를 가졌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초유의 위기지만 여러분의 헌신이 있어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모두 힘을 내 이 위기를 이겨내고 조만간 마스크 벗고 활짝 웃으며 만나자”며 격려했다. 또 종합기술원에선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미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국민 성원에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혁신”이라며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강조해 큰 호응을 받았다. 설·추석 연휴에는 계열사 사업 현장 등을 방문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 영업이익 58조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지난해에는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도 27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선방했다. 재계 관계자는 28일 “이 부회장은 권위적이었던 1, 2세대 경영인과 달리 3세대 경영인으로서 현장 소통을 중시하고 합리적으로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임직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0만5257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연구개발비 역시 20조2076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섰다. 또 2018년 8월 180조원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을 시작으로 지난해 4월 시스템 반도체에 2030년까지 133조원 투자, 지난해 9월 차세대 디스플레이 사업에 13조1000억원 투자 등의 계획을 잇달아 내놨다. 국내 대표기업으로서 사회적 기대에 적극 부응하고 있지만 이 부회장의 사법 처리 가능성은 경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혐의는 현재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도 이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피고인은 아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재판 등이 진행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다음 달 11일 이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권고로 하게 될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삼성의 변화를 가늠할 지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측은 대국민 사과를 충실히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경쟁력 강화의 첨병 역할을 하는 삼성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글로벌 기업답게 법을 엄정하게 지켜 사법 리스크를 줄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