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된 대북 제재에 코로나19 여파까지 더해지면서 경제적 위기에 몰린 북한이 17년 만에 국내용 채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북한의 재정난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토머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은 27일(현지시간) 미국의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가 수입이 줄자 2003년 이후 처음으로 ‘국내용 채권(domestic bonds)’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고문에 따르면 국채 발행의 목적은 시중에 유통되는 외화를 최대한 회수하는 것이다. 국채 발행 규모는 북한의 한 해 예산(2019년 기준 약 10조원)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 대다수는 국영기업이 떠안을 예정이지만 약 40%는 ‘돈주’에게 팔린다고 한다. 신흥자본가인 돈주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사업 허가권을 받기 위해 국채를 매입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환전 및 고리대금업으로 몸집을 불린 돈주들은 이후 사금융시장, 실물경제 투자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앞서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공채 발행을 비준했고, 내각위원회가 인쇄를 마쳤다고 전했다. 공채는 15일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에 맞춰 조선중앙은행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11일 정치국 회의는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김 위원장이 자취를 감추기 전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공식행사다.
데일리NK는 북한이 공채를 발행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평양종합병원 등 건설작업에 투입할 예산이 없어서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세계 각국의 대북 제재로 사람·물자·돈 이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고립은 2006년 1차 핵실험 때부터 지속됐지만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자금 사정이 더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지난 1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최대교역국이던 중국과의 무역 거래를 중단한 여파도 컸다는 분석이다. 중국 해관총서 통계를 보면 지난달 북·중 무역 총액은 지난해 동월 대비 90% 이상 줄었다.
북한은 2003년 ‘인민생활공채’라는 명목으로 500원, 1000원, 5000원 세 종류의 1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한 적이 있다. 당시 공채 발행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임금이 인상되면서 통화량이 늘자 이를 흡수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