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완·박인하의 만화는 시대다] 어두웠던 시절, 청춘들을 가둔 유리벽을 깨다

입력 2020-05-02 04:03
‘공포의 외인구단’ 만화 컷. 필자 제공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처음 내딛는 탐험가는 늘 외롭다. 그 길에서 만나는 절벽과 세상의 끝은 그의 운명이다. 하지만 화려하게 열리는 보물섬의 판타지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된다. 그 길에서 우리는 다음 세상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희망과 꿈을 꾸는 사람도 자라난다. 그러나 그 어렵고 힘든 여정을 매번 지치지 않고 해낼 힘은 자신을 믿는 마음과 독자들, 그리고 세상의 방향을 믿는 그의 시선에서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모두가 즐거워 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는 마음으로, 작가 이현세는 그 길을 오늘도 외롭게 걷는다.

청춘의 해방구, ‘공포의 외인구단’

까치 오혜성은 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실패한 루저들을 모아 무인도로 떠나는 지옥훈련의 시작에서 손병호 감독은 이렇게 내뱉는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게 해주겠다.” 군사정권에 기죽어 살던 청춘들에게 이현세는 주인공을 통해 이렇게 외쳤다. 마치 순정한 사랑이란 그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독스러움인 것처럼. 자신의 신념으로 한국 현대사를 바꿔보겠다는 청춘들의 용기도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싶다.

당시 신념의 경계의 서 있던 청춘들에게 해방구는 만화방이었다. 5월 5일 어린이날만 되면 당시 남산 어린이회관 광장에 만화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화형식을 하던 군사정권, 그들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모든 탈선과 비행이 만화책에서 시작된다고 세상을 겁박했다. 정권이 정하는 정의와 방향을 모든 정당성의 시작이자 끝인 것으로 선동했다. 히틀러 정권의 전체주의가 누구도 반항할 수 없는 명분의 연속으로 이야기를 몰아가듯, 우리의 80년대도 그렇게 암흑의 굴레에서 묻혀갔다.

당시 정권은 만화책이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서적 성숙을 위해 존재하며, 철저한 사전검열을 통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매번 원고에 수정과 보완을 지시했다. 그런 과정을 통과해 ‘사전심의필’이라는 도장이 찍힌 원고만 만화방에서 판매될 수 있었다. 당시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기득권을 향한 반격을 담은 ‘공포의 외인구단’은 사전심의를 통과할 수 없는 준성인 멜로드라마였다.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야구를 통한 인생역전의 통쾌함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스토리였지만, 실제 그 작품은 숨겨진 아픔을 향해 고독한 신념으로 내달리는 청춘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지난한 젊음의 문신 같은 기억들이 독자들의 삶을 바꾼다. 어떤 사람은 사법고시를 보러 가던 시험 전날까지도 그 만화 때문에 순간 찾아오는 흔들림을 이겨낼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은 그 만화로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보고 저항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중장년이 돼 이현세를 만나면 그저 반갑고 고맙다고 인사한다. 어둡고 불안했던 젊은 시절, 이현세는 만화에서 희망을 찾고 숨을 쉬던 청춘들을 위해 한국의 현대사를 가뒀던 유리 같은 벽을 그렇게 하나하나 부쉈다.

만화가 이현세는 작품과 행동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그는 군사정권 시절 기득권을 겨냥한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로했다. 또 세종대 만화창작캠프와 ‘한국만화 해외 진출을 위한 발전위원회’ 등을 이끌며 후배들이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필자 제공

후배들의 든든한 기둥

독도와 역사 왜곡 등으로 일본과 외교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대개 양국 정부는 매번 해답 없는 명분 쌓기에 몰두하며, 되레 각자의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술수로도 사용해왔다. 그래서 결론 없는 싸움이 반복됐고, 답도 얼마간 정해져 있기 마련이었다. 1995년 5월에 창간된 영화잡지 ‘씨네21’은 통권2호에서 이현세의 ‘남벌’을 표지로 하며 특집으로 기사화했다. 대개 영화배우의 사진과 영화 포스터가 표지로 쓰이는 씨네21 창간 초기에 ‘남벌’의 제시가 주는 메시지는 강했다. 당시 남벌의 스토리는 일본에 대해 우리가 하고 싶던 모든 해답을 대신한 ‘통쾌함’ 그 자체였다.

일본 내에서 한국인을 차별하고, 여전히 제국주의적 환상에 빠져있는 일본군부를 향해 핵무기를 갖고 있던 북한과 함께 남북연합군이 일본열도를 초토화한다는 이야기. 마지막권에 정리된 일본의 항복문서에는 독도의 소유권뿐 아니라 대마도까지 우리의 영토로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또 이를 통해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고,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책임도 통렬하게 묻는다.

‘천국의 신화’ 캐릭터 컷. 필자 제공

그러나 ‘독도는 우리땅’을 동요처럼 전 국민에게 부르게 한 가수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듯, 1997년 발표한 ‘천국의 신화’로 이현세는 미성년자보호법이라는 굴레에 갇혀 6년간 소송에 시달린다. 1심에서 벌금형에 그쳤지만, 그는 세상과 타협할 수 없었다. 이미 만화계의 양심과 책임을 짊어진 그는 다시 2심을 청구해 결국 무죄를 받게 된다. 하지만 열정적인 작품세계를 순항하던 40대 작가에게 6년은 너무나 아픈 후퇴였고, 그를 지치게 했다.

그러나 그는 모두가 시도만 했던 성인만화 시장에 도전장을 내며 부활했다. 직접 국산 브랜드 잡지 ‘Mr. Blue’를 창간한 그는 양영순의 ‘누들누드’를 앞세워 평정했다. 그는 또 다른 신시장을 개척한다.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만화 세계사 넓게보기’ ‘이현세의 만화삼국지’ ‘처음 만나는 그리스로마신화’ 등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학습만화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현세의 대표작들 표지. 필자 제공

이현세는 또 골프드라마의 원작이 된 ‘버디버디’와 액션물 ‘창천수호위’와 ‘비정시공’, 흡혈귀의 사랑을 재해석한 ‘레드파탈’ 등으로 멈춤 없는 창작 열정을 보여주며, 독자 트렌드를 꿰뚫은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네이버웹툰 연재 제의를 받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 ‘천국의 신화’를 통해 그는 네이버웹툰 작가들의 송년 모임 때 신인작가상을 수상한다. 자신이 대학에서 키운 ‘웹툰 키즈’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 신인작가상을 받으며 그는 여전히 창작의 현장에서 목말라하는 전설의 현역작가로 세상을 호령한다.

동료 만화가 이두호 교수가 2001년 시작한 세종대학교 만화창작캠프에 초기 방문 교수로 동행했던 이현세는 그가 정년퇴직한 이후 캠프를 이어받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강원도 산골의 캠프장으로 전국 웹툰 플랫폼 편집장들을 불러들여, 젊은 예비작가들에게 새 가능성을 열어줬다. 네이버웹툰을 비롯한 30여명의 편집장들은 숨겨진 보석을 찾는 감별사처럼 젊은 이야기들을 발굴해 캠프 이후 작가로 스카우트하는 리크루팅 모델을 만들게 된다. 2013년부터 전국의 만화지망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며 새로운 작가군을 발굴해냈던 ‘이현세 네이버만화 지옥캠프’가 그 시작이었다.

작가 이현세는 이미 2013년 네이버문화재단으로부터 기금을 받아 ‘한국만화 해외진출을 위한 발전위원회’를 구축해냈다. 이를 통해 웹툰의 세계화가 공격적으로 시도될 수 있었다.

이제 라인웹툰과 카카오페이지의 픽코마, 레진 등 국내 웹툰 플랫폼의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곳곳의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한국의 웹툰 방식으로 풀어낸다. 2019년 대구에 개설된 웹툰캠퍼스 명예교장을 맡은 이현세는 지방 곳곳의 예비작가에게도 연재 가능성을 열어줄 또 다른 지역캠프도 구상한다.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누구나 작가의 꿈을 시도할 수 있는 세상을 쉬지 않고 상상하는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서도 또 다른 도전을 준비했다. 일제강점기 때 사라져간 한국의 도깨비를 살려내고,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처럼 우리의 아이들에게 전설을 남겨주기 위한 작품의 구상을 시작했다.

여전히 그에게는 이 세상에 할 일이 많다. 후배와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모아 펴낸 자신의 에세이 책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란 제목처럼, 그는 자신을 믿고 세상에 길을 낸다. 그는 한국만화의 가능성을 늘 만들어 왔으며, 현재의 한계를 부수어나가는 그의 작업도 늘 진행형이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