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가뜩이나 지난해 수출은 매월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었다. 올해 초 잠시 반등 기미를 보이던 수출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수요 급감이라는 ‘카운터펀치’를 얻어맞고 고꾸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폭풍’이 지나간 뒤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다방면에서 산업정책 리모델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조업’ 수출전략 대대적 수술 불가피
국내총생산(GDP)에서 27.8%를 차지하는 제조업은 명실상부한 한국 경제의 허리다. 상대적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고 서비스업 비중이 낮아 한국이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 타격을 덜 받았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폭풍은 공급에서 수요까지 다방면으로 제조업을 할퀴고 지나갔다. 코로나19 초기 국면에서는 ‘세계의 생산기지’라는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대적인 공급망 교란을 겪어야 했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지난 2월 중국 생산량이 전체의 80%인 ‘와이어링 하네스’(자동차 안의 전기장치 배선을 하나로 묶어주는 케이블 뭉치) 공급 차질로 생산량이 1년 전보다 27.8%나 줄었다. 공급망 교란이 진정되자 이번에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3월 중순 이후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돼 수출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제조업에서 설비 자동화 확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경우 저렴한 인건비를 강점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의 위상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8일 “중국 내수시장을 보고 들어간 기업들은 계속 남아 있겠지만 중국을 공급망 조달 기지로 삼았던 기업들은 ‘탈(脫)중국 러시’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이 신남방 지역의 생산 네트워크와 밸류체인(VC)을 확대해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스마트공장 확대도 시급하다. 정부는 2022년까지 국내에 스마트공장 3만개를 만든다는 방침이지만 현재까지 1만2660개에 그치고 있다.
차제에 미국처럼 제조기업의 국내 복귀를 보다 전향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유턴법 지원 대상을 제조업에서 지식서비스·정보통신업까지 확대하고 조세 감면과 국공유지 임대 지원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업계는 높은 인건비와 정부 규제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해외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오기는 어렵다는 회의론을 나타내고 있다.
ICT 접목 서비스로 돌파구 모색
코로나19를 계기로 본격화된 비대면 소비에 발맞춰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서비스산업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육성해 수출의 무게중심을 제조업에서 비대면 하이테크 서비스업 쪽으로 서서히 옮겨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의료기술이나 ‘K팝’ ‘K뷰티(화장품)’ 등 우리가 강점이 있는 서비스 분야의 국내 규제를 전향적으로 완화해 코로나19 이후에 저절로 외국인이 찾아올 수 있게 하면 제조업·상품 수출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세계가 한국의 방역 모델과 진단키트 등에 높은 관심을 보인 것도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뛰어난 ICT 기술력과 의료경쟁력에도 관련 업계 반발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던 원격의료와 같은 서비스업을 적극 지원해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창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신산업 발굴과 동시에 코로나19를 계기로 도태된 업종에 대해서는 과감한 사업 재편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현재 기업이 사업 재편을 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기업활력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대상이 중소기업에만 적용되고 있다. 대기업들이 적극적인 사업 재편에 뛰어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도 국내 반(反)재벌 정서를 의식해 대기업의 사업 재편 유도에 소극적으로 나섰던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수 활성화, 세계 정세 변화에도 촉각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수요 급감에 따른 수출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경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더욱 과감한 내수경기 활성화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수출은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우선 정부가 주도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내수 살리기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일회성 소득 지원뿐 아니라 파격적인 소비 행사 개최나 각종 서비스 분야 규제 완화도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요동칠 수 있는 세계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 역시 정부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미 코로나19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정책적 협력보다는 서로를 코로나19 진원지로 지목하는 등 신경전을 이어오면서 봉합 국면을 맞는 듯했던 갈등이 다시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밸류체인(GVC) 교란이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선제적, 적극적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