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태형·미성년 사형 폐지… 사법체계 현대화 시동?

입력 2020-04-28 04:08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로이터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사법체계 현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우디는 최근 수년간 여성의 사회 참여를 늘리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슬람 형법 ‘샤리아’를 바탕으로 태형, 사형 등을 집행해 국제사회로부터 ‘인권 후진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영국 BBC방송은 사우디가 지난 24일(현지시간) 태형을 금지한 데 이어 26일 미성년자 피고인에 한해 사형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왕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기관인 인권위원회의 아와드 알아와드 위원장은 “미성년자는 사형 대신 10년 이하의 소년원 구금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형법상 살인, 강도, 신성 모독, 왕가 모독, 테러, 내란, 성폭행, 간통, 마약 밀매 등 중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사우디에서 184명이 사형을 당했다. 1995년 195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올해도 벌써 12명에게 사형이 집행됐다.

사우디 인권위는 이날 사형 집행을 금지한 미성년자의 나이 기준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만 18세 미만의 사형 선고 및 집행을 금지하고 있다.

가디언은 “이날 청소년 사형제 폐지가 발표되면서 최소 6명이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슬람 소수 종파인 시아파 출신으로 ‘아랍의 봄’ 민주화운동 당시 미성년자였던 이들은 사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유엔과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들에 대한 사형 집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해 왔다.

사우디의 사법 개혁은 사실상 왕국을 통치하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 이슬람 사회인 사우디를 현대화하려는 의지를 피력해 온 왕세자는 2018년 여성의 운전과 축구 경기 관람, 입대를 허용하고 수도 리야드에 35년 만에 상업 영화관을 열었다. 하지만 같은 해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과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으로 이 같은 개혁 드라이브가 무색해졌다.

특히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사우디 왕실을 비판해 온 카슈끄지 살해 사건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초래했다. 살해 배후로 왕실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서둘러 살해 혐의를 받은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살해 배후로 의심받는 왕세자의 최측근은 무죄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는 사우디에 여전히 많은 ‘부당한 형벌’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참수형, 사지절단형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BBC는 “많은 인권운동가와 여성 활동가들이 구금돼 있다. 지난주엔 인권운동가 압둘라 알 하미드가 뇌졸중으로 감옥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동료들은 그가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