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의 소송에 나서면서 국내 통신사와 콘텐츠사업자(CP) 간 망 사용료 분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동영상서비스의 급증으로 인터넷 망에 대한 부하가 커지는 가운데 콘텐츠사업자들이 망 사업자(ISP)에 비용을 지급해야하는지가 골자다. 앞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서 양측의 분쟁을 조정 중이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법적 대응에 나선 넷플릭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글로벌 유료 가입자 수는 1억8300만명에 달한다.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만 1577만명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아 총 200만~300만명의 가입자를 거느린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확산 탓에 외출을 자제하는 사용자들의 가입이 늘면서 점차 세를 넓혀가고 있다.
망 사용료를 두고 통신사들과 넷플릭스 등 콘텐츠사업자(CP)는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갈등은 결국 소송전으로 번졌다. 넷플릭스는 지난 13일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망 이용대가와 관련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망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사법부가 판단해달라는 의미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국내에 막대한 트래픽을 일으키기 때문에 망 관리 의무를 분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내의 우수한 통신 인프라를 이용해 원활한 서비스를 하는 만큼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지급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유다. SK브로드밴드는 연간 8000억원 가량의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다.
반면 넷플릭스는 ISP의 망 사용료 요구가 ‘망 중립성’을 위배한다고 반박한다. 망 사용료는 이미 사용자들이 지불하고 있으며, CP는 콘텐츠 제작과 서비스 외에 망에 관한 의무를 질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국내 통신업체들은 이 주장에 속앓이만 하고 있다. 혹여 넷플릭스 측이 화질을 낮추거나 서비스에서 끊김 등의 장애가 발생할 경우 사용자들의 불만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 대신 국내에 주요 콘텐츠를 미리 보관해두는 캐시서버를 설치해줌으로써 망 부하를 낮출 수 있다는 식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다. LG유플러스는 2018년 이 제안을 받아들여 독점 서비스에 나서는 대신 망 사용료를 받지 않았고,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IPTV 매출 1조원을 넘겼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KT에도 같은 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의 모회사인 SK텔레콤은 지상파 3사와 OTT 웨이브를 출범시킨 만큼 ‘경쟁자’ 넷플릭스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넷플릭스가 해외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지적 대상이다. 넷플릭스는 미국·프랑스 등 해외 ISP에게는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페이스북도 SK브로드밴드와 망 사용료 협상을 하던 도중 방통위가 임의로 접속경로를 변경한 것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리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넷플릭스는 이번 소송에서 당시 페이스북 측의 변호를 맡아 방통위를 상대로 승소한 김앤장을 파트너로 삼았다.
전문가들은 변화된 콘텐츠 시장 환경에 맞는 새로운 망 사용료 체계가 수립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글로벌 사업자가 규제 사각지대를 악용할 수 없도록 국내법 적용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용량이 나날이 커지는 등 망에 대한 관리 비용이 커지는 가운데, 해외 콘텐츠 기업이 국내 사업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분담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