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길냥이’ 살려라” 민관 구조 매뉴얼 만든다

입력 2020-04-28 04:03
고양이 구조 활동가 모임인 ‘이문냥이 프로젝트’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구역에서 구조한 새끼고양이. 이문냥이 프로젝트 제공

“저기 4층에서 태어난 지 2주 된 새끼 고양이를 구조했어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구역의 한 공가에서 고양이 포획 틀을 설치하던 ‘캣맘’ 권보라씨가 연립주택 한 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재개발을 앞둔 지역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빈집이 돼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물이었다. 권씨는 새끼고양이를 재개발구역 한 공가에 임시 보호한 후 SNS 계정 ‘이문냥이 프로젝트’를 통해 수유처에 보냈다. 권씨와 또 다른 캣맘 문성실씨가 주축이 된 이문냥이 프로젝트가 지난 두 달여간 이런 식으로 구조한 고양이는 90여 마리에 달한다.

거리생활에 익숙해진 고양이들에게도 재개발구역 생활은 유독 힘겹다. 철거가 시작되면 깔려 죽는 고양이들이 부지기수이고 거리에 떨어진 건물 잔해와 유리 파편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영양실조와 구내염, 헤르페스 등 질병도 달고 산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개체가 많아 이런 상황에서 번식이 이어지는 것도 문제다.

고양이들의 경계심이 커지면서 구조활동도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엔 포획 틀에 적응한 고양이들이 미끼용 먹이만 건져 먹고 사라지는 일도 허다하다.

반면 철거작업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3주 전부터 건물을 철거하고 중장비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내고 있다. 고양이 밥자리로 가는 길도 건물 잔해와 유리 파편, 쓰레기가 가득했고 가림막이 쳐 있었다. 활동가들이 포획 틀을 설치하러 가는 일이 위태롭게 느껴질 만큼 환경이 악화된 상태였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재개발이 시작돼도 스스로 구역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인적 드문 공가에 터를 잡고 살다가 철거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최근에야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27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는 재개발구역 고양이 구조작업 시범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관련 조례를 발표한 데 이어 처음으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서울시는 ‘동물권행동 카라’를 시범사업자로 선정해 서울시내 두세 곳 재개발구역에서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사업은 재개발 진행 시 관할 자치구와 동물보호단체 등이 구역 내 고양이를 관리하고 구조하는 방법에 대한 매뉴얼을 만드는 게 목표다.

매뉴얼의 핵심은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단계 이후 자치구와 지역 캣맘, 주민들이 함께 고양이 중성화 수술과 밥자리 옮기기 작업 등을 병행해 자연스럽게 이주시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주작업이 시작돼 공사장 가림막이 올라가고 나면 이미 너무 늦는다”며 “주민들이 지역에 남아 있을 때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지역 캣맘들이 재개발 조합과 시공사의 선의에 기대어 구조작업을 펼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구조작업에 효율적이지 못했고 재개발 조합도 공사 일정이 연기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현장활동가들은 고양이 구조작업으로 공사 일정을 늦추는 일은 없다고 강조하지만 재개발 조합과 건설사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서울시내에만 재개발구역이 600여곳이고 거리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는 수도 없이 많은 상황에서 캣맘들의 활동에 큰 의미가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문씨는 “‘다 못 구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2년이든 3년이든 제 명대로 살 수 있던 아이들을 죽게 그냥 둘 순 없다”며 “고양이들이 살던 곳도 철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최소한 밖으로 탈출시켜주는 노력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