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긍정 코드

입력 2020-04-28 00:02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공항검역소의 연락을 받았다. 지난달 말 이용했던 국내선 항공편에 코로나19 확진자가 타고 있었던 게 이유였다. 놀람과 걱정이 교차했다. 담당 공무원의 신속하고 친절한 안내와 함께, 직접 배달해준 자가격리 용품에 놀랐다. 자가격리 기간을 함께 보내야 할 모친과 아내에 대한 걱정이 무엇보다 앞섰다.

긍정 코드 하나. 감사하게도 별일 없이 2주가 지났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염려와 걱정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날들이었지만 감사의 시간이었다. 수업을 비롯한 몇몇 중요한 외부 일정을 온라인 회의로 진행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인터넷의 도움으로 보고 싶은 얼굴은 언제든 볼 수 있었다.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었고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가장 감사했던 것은 의도적으로 미루고 외면했던 사물인터넷(IoT)의 기술 세계로 들어와 적응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긍정 코드 둘. 비슷한 이유로 나보다 먼저 자가격리 중이었던 큰아들 내외에게, 나도 자가격리 중이라는 동병상련의 위로를 전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 내외의 자가격리 소식을 듣고 많이 걱정했는데, 나의 처지가 약간의 위로라도 된 것 같아 기뻤다. 코로나19로 곳곳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에 대한 염려는 컸지만, 그래도 어느 때보다 더 자주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긍정 코드 셋. 어디를 가든 마스크를 착용할 수밖에 없는 일상이지만, 대신 파란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어 감사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치유되는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있어 감사하다. 사람 간 거리 두기로 만남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사람 곁을 떠났던 산과 바다의 야생동물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니 감사하다.

긍정 코드 넷. 코로나19 이후, 감염 확산의 주요 원인 제공자로 떠오른 신천지에 대한 비판과 대응에 몰두해 왔던 이단 연구가인 나에게, 자가격리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신천지 비판보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더 필요하고 신천지에 대한 불신보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더 중요하며 진정한 이단 대처는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상식적 진리를 재확인할 수 있어 감사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주변에 긍정 코드가 참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매일 접하는 빅데이터 중에는 부정적 코드가 대부분이다. 부정 코드를 제거할 때 비로소 긍정 코드를 발견할 수 있다. 긍정 코드를 연결해 나아가면, 코로나19 이후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긍정 코드를 찾는 일은 희망 고문과 전혀 다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실재했던 팩트다.

구한말 콜레라가 창궐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갈 때, 알렌 언더우드 에이비슨 선교사를 비롯한 기독교인은 전염병 확산을 막는 데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이로 인해 교회는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복음 전도의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다. 중세 흑사병이 온 유럽을 휩쓸며 수천만 명이 희생됐지만, 위클리프 후스 루터로 이어지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라는 긍정 코드로 이뤄진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졌다.

자가격리를 마친 후 매일매일 주어지는 평범한 아침이 새롭고 감사하다. 우리가 맞게 될 ‘새로운 상식’의 시대가 다양한 긍정 코드로 가득 차면 좋겠다. 포스트 코로나19, 좌절과 패배의 코드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일보다 긍정 코드를 관측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 세상을 바꾸기는 힘들어도 세상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 이것이 긍정의 힘이고 믿음이며 은혜다.

탁지일(부산장신대 교수·현대종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