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 필그림선교교회(양춘길 목사)는 미국장로회(PCUSA)의 동성결혼 허용, 동성애자 목사 안수 정책에 반대해 2017년 12월 파라무스 소재 예배당을 포기하고 교단을 탈퇴했다.
1200만 달러(약 148억원)의 교회 건물을 포기한 대가는 혹독했다. 1500여명의 장년 성도와 500여명의 학생은 크리스마스 예배 후 곧바로 길거리에 나왔고 광야 생활이 시작됐다. 이 사실이 미주 교계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까지 알려지면서 반향을 일으켰다. 많은 교회에서 성금이 답지했고 출석이 뜸하던 성도들도 경각심을 갖고 다시 출석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잉글우드 드와이트모로 고등학교를 빌려 예배를 드리는 필그림선교교회의 예배 분위기는 1년 전 방문 때보다 더 차분했다. 양 목사는 “파라무스 건물에서 나와 2년이 지났는데, 교회가 안정감을 찾으면서 지난해와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주일학교 운영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는데 정착이 됐고 사건을 겪으면서 성도들이 겪었던 상한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 목사는 “과거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을 놓고 나오면서 성도들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기 시작했고 지역사회와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교회가 역동성을 띠는 것은 ‘은사동’(은혜와 사랑의 동산 모임)이라는 소규모 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매주 500여명의 성도들이 교구별로 모임을 갖고 주일 말씀을 다시 묵상한 뒤 이 말씀을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가정과 일터, 지역사회에 흩어져 복음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자신이 가진 은사나 물질, 재능을 갖고 지역사회로 파고 들어가는 ‘흩어지는 교회’의 개념인 셈이다.
양 목사는 “교회의 전통적 패러다임에선 평신도의 리더십을 개발해 교회의 성장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흩어져 차세대를 위해,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퍼져 나가야 한다”면서 “건물은 카페나 도넛 가게 등을 빌려 하드웨어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폭 줄이고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 사람을 키우고 제자로 만드는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범구(64) 안수집사는 “은사동 중심으로 매주 미혼모를 위한 센터를 방문하고 맨해튼에서 노방전도를 하며 노숙자를 위한 사역도 펼친다”면서 “성도들이 더 적극적으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김수용(53) 안수집사도 “은사동이 자발적으로 음악회를 개최하고 소방서·경찰서를 지원하는 등 파라무스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했다.
양 목사는 교회가 점점 커질수록 투입되는 고정경비와 대출금 부담이 늘어 선교적 교회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양 목사는 “미국에서 한인들이 몰려들어 대형교회가 되면 전기세만 최소 1만 달러를 내야 한다”면서 “더 많은 사람을 유치하기 위해 건물을 사고 키우다 보면 모기지론 대출도 갚아야 하고 파송보다 성도를 끌어모으는 데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회는 수평 이동 교인을 유치하기 위해 더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경쟁해야 한다”며 “건물 유지 등 고정경비 마련이라는 비본질적인 데 집중하다 보면 선교적 교회로 나아가는 데 발목이 잡히고 만다”고 분석했다.
양 목사는 “교회의 본질은 일꾼을 계속 파송하고 물질을 지역사회에 흘려보내는 것”이라며 “교구별 예배를 드리다가 분립개척을 원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과감하게 파송해야 한다. 교회가 성경적 원칙을 이행한다면 재정과 사람은 또다시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동영상 예배로 전환했다. 평상시엔 드와이트모로 고교 강당에서 대예배가 3회 진행된다. 영유아부, 유년부, 유치부, 초중고등부 예배는 제니스 디스무스 중학교 교실과 중강당을 사용한다. 교회 사무실은 뉴저지주 티넥에 있는 가구공장 건물의 2층 전체를 사용한다.
김정희(50·여) 집사도 “지난 2년간 눈물을 안 흘린 성도가 없을 정도로 혹독한 광야 생활을 겪었다”면서 “일부는 ‘왜 양 목사님을 따라가느냐.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때마다 우리는 ‘양 목사님을 따른 게 아니라 성경을 따른 것이다. 양 목사님이 동성애를 지지했다면 정반대의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고 했다.
송수경(43·여) 집사는 “교회 건물은 과거에 있다가 현재는 없는 것일 뿐, 큰 차이는 못 느낀다. 건물이 교회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필그림선교교회를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유정호(56) 장로는 “파라무스 시절엔 교회 시설과 자녀교육 때문에 성도들이 교회를 찾았다면 요즘은 진짜 교회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뉴저지=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