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간 존엄성 존중하는 디지털 환경 구축해야

입력 2020-04-28 04:05

2018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나디아 무라드는 이라크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출신이다. 2014년 이슬람국가(IS)에 성노예로 끌려가 온갖 고통을 겪다가 겨우 탈출해 현재는 당시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디아는 IS 대원들에게 성착취와 참혹한 고문까지 당했다. 나디아는 자신과 같은 여성이 수천 명이었다고 증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같은 반인륜적 범죄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디지털이란 곳으로 장소만 바뀌어 이뤄지고 있다. 나디아가 있던 방에 들어가 그녀를 짓밟은 IS 테러범들과 ‘n번방’에 들어가 아동 등의 성을 착취한 남성들은 모두 인간 존엄과 가치를 유린한 범죄자들이라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반인륜적 범죄는 실체를 끝까지 찾아 척결해야 하며, 인권을 유린당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은 나디아처럼 당당히 세상에 설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 경찰은 가담자 전원을 철저히 수사해 책임을 묻고 전담팀을 구성해 피해자 신변 보호에 정성과 진심을 다할 것이다. 피해자들은 신변 노출과 영상 재유포 우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제든지 성범죄 영상이 재유포될 수 있는 지금의 디지털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러한 반인륜적 범죄까지 이용자의 익명성과 보안성을 보장해줘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바란다. 자신이 개발한 플랫폼에서 반인륜적 범죄가 이뤄졌다면 개발자나 기업은 피해자가 추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환경을 개선할 책임이 있다.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애플은 아동 성착취물을 제공한 SNS에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앱스토어에서 해당 앱을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나디아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저서 제목을 ‘더 라스트 걸(The last girl)’로 했다고 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이번이 마지막이 되길 희망하면서 인간이 존엄한 디지털 환경을 기대해본다.

김병구 제주지방경찰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