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4월 29일 지금의 서울시의회 본관인 경성부민관에서 국립극장 개관 및 국립극단 창단식이 열렸다. 광복과 함께 모국어를 되찾은 연극인들이 중심이 되어 국립극장 설치운동을 전개한 끝에 거둔 성과로 아시아 최초다. 국립극장과 국립극단이 오는 29일 개관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희(古稀) 기념 공연과 행사 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국립극장과 국립극단은 현대 한국 공연예술의 역사와 함께 했다. 1948년 정부에서 국립극장 창설안이 통과된 후 이듬해 국회에서 관련법이 제정됐다. 국립극장은 출범 당시 전속 극단으로 신극협의회(신협)와 극예술협의회(극협)를 뒀다.
국립극장은 개관식 이튿날 개관공연으로 ‘원술랑’(유치진 작, 허석 연출)을 무대에 올렸다. 1주일 동안 6만명 가까운 관객이 몰려왔다. 6월에 선보인 두 번째 공연 ‘뇌우’ 역시 15일간 7만5000여명이 관람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당시 서울시 인구가 150만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출발이었다.
하지만 개관 58일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국립극장도 대구로 피난을 가야 했다. 이때는 전속단체를 두지 않고 공연을 올렸다. 1957년에야 서울로 돌아온 국립극장은 명동 시공관을 사용하는 한편 신협을 전속단체로 복귀시켰다. 다만 당시 극단 내 갈등과 영화 붐에 따른 대중의 연극 외면으로 해체론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1959년 신협을 재영입하고 민극을 전속극단으로 새롭게 둔 국립극장은 1962년 두 극단을 통합해 직속으로 국립극단을 재발족했다. 당시 국립오페라단·무용단·국극단(창극단)도 새롭게 전속단체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1972년 장충동의 새 국립극장으로 이전하면서 8개 전속단체로 새롭게 출발했다. 2000년 오페라단·합창단·발레단이 재단법인으로 분리돼 예술의전당으로 옮겨간데 이어 극단도 2010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현재 국립극장에는 창극단·무용단·국악관현악단 등 전통 기반 단체 3개가 속해있다.
국립극장은 정부 정책 등에 따라 부침을 많이 겪었으며 평판이 나빴던 시기도 상당해 ‘무용론’이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예술의전당 출신의 안호상 극장장(현 홍익대 공연예술 대학원장)이 취임한 2012년부터 전속단체 제작 공연 등으로 연간 프로그램을 채우는 시즌제를 실시하는 등 부활에 성공했다. 올해 70주년에는 역사적 의미를 담아 3개 전속단체 외에 나머지 국립 단체들까지 모두 포함한 시즌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다.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미뤄진 국립극장은 지난달 창극 ‘패왕별희’와 무용 ‘묵향’ 등을 유튜브로 스트리밍하며 관객의 아쉬움을 달랬다. 국립극단 역시 지난달부터 ‘페스트’ ‘1945’ 등의 온라인 상영회를 열었다.
국립극장과 국립극단은 다음달 5일 이후 생활방역으로 전환되면 관객과 다시 만나기 위해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당장 국립극장은 5월 14일 국립창극단의 ‘춘향’으로 막을 연다고 발표했다. 김철호 국립극장장은 “방역을 철저히 한다면 공연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예술적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립극장은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쳐 최신식 시설을 갖춘 해오름극장을 올해 말 재개관 할 예정이다. 김 극장장은 “국립극장의 다음 30년을 준비하는 개관이 될 것”이라면서 “제작극장으로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남북 문화 동질성 회복과 국제적인 문화 허브로서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