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4·27 선언을 도출한 지 2년이 지났다. 후속 남북 정상회담, 나아가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까지 진행됐지만 이후에도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롤러코스터에 탄 형국이다.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를 추동해 선순환 구도를 만든다는 문재인정부의 구상은 판문점선언 이후 약 10개월 동안 순풍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사태 이후 북·미 교착 상태가 남북 관계 진전을 가로막는 악순환 구도로 바뀌고 말았다.
판문점선언의 의의는 2016~17년 북·미 간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갔던 한반도 정세를 완화 국면으로 돌려놨다는 데 있다. 이 시기 북한은 핵실험만 세 차례 하고,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듭하며 긴장을 최고도로 높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판문점선언은 남북 관계 발전과 함께 군사적 긴장 완화에 중점을 뒀다.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합의했다. 이를 위해 남북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로 했다. 선언문에 담긴 군사적 긴장 완화 원칙은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에서 구체화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담판으로 남북 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북·미 대화에도 시동이 걸렸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선언 채택 후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열었다. 판문점선언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은 북·미 정상 공동성명에 그대로 담겼다. 하지만 이듬해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북·미 협상은 멈춰서고 말았다.
북·미는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실무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협상 재개를 타진했지만 결국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및 코로나19 대응으로 당분간 북한 문제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남·북·미 정상 간 개인적 신뢰는 여전하다는 점이 그나마 긍정적인 대목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난달 초 코로나19와 관련해 친서를 교환했다. 이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북·미 관계 구상과 코로나19 협력 의사를 담은 친서를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도 정상 통화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국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를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미 관계 진전이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 코로나19 방역 협력이 실타래를 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판문점 선언이 남북 평화·경제공동체를 추구했다면 코로나19 이후에는 이를 생명·생활공동체로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초 문 대통령은 대북 제재와 무관한 경협 사업으로 북한 개별관광을 제안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당분간은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남북 보건 협력도 제안했으나 북측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아 소회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관계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획기적인 제안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전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강원도 고성에서 동해북부선 재추진 기념식을 하고 남북 관계 발전 의지를 강조할 예정이다.
조성은 임성수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