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김환기 최고의 대표작이지요. 나중에 국보 아니면 보물이 될 작품 아닌가요. 이걸 외국인이 사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번 전시에 나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우리가 권해서 한국 컬렉터가 샀고 고맙게도 50주년 전시에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대여해 주셨지요.”(박명자 회장·사진)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1호 상업화랑 갤러리현대가 50주년을 맞아 회고전을 열고 있다. ‘갤러리현대 반백 년의 역사를 돌아보다’라는 전시 제목에 걸맞게 오늘이 있기까지 함께 한 동반자를 소개하며 성장사를 보여준다.
갤러리현대는 1970년 4월 4일, 당시 27세의 박명자 회장이 반도화랑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현대화랑(갤러리현대 전신)’ 간판을 걸면서 시작됐다. 1975년 지금의 삼청로로 확장 이전했다.
전시에는 갤러리현대와 인연을 맺은 작가 40명의 작품 70여 점이 나왔다. 구관에는 이상범, 변관식, 김기창, 천경자 등의 동양화가와 도상봉, 이중섭, 박수근, 박고석, 오지호, 권옥연 등의 서양화가의 구상 위주 작품을 걸었다. 신관에는 추상화 작가들을 소개했다. 특히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김창렬, 정상화 등 1970년대 한국의 추상미술 경향인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은 별도로 한자리에 모았다. 김환기 작가의 71년 작 ‘우주’도 한 코너를 장식했다. 지난해 11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32억원(8800만홍콩달러)에 팔리며 한국 미술품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첫 한국 나들이다.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독일관 작가로 참여해 황금사자상을 받은 TV 조각 ‘마르코폴로’도 단독 전시돼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들은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열며 작가 인생의 분기점을 마련했다. 갤러리현대의 전시 역사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역사인 셈이다. 예컨대, 1970년 김기창 개인전에서 트레이드마크인 청록산수가 처음 나왔다. 1972년 이중섭 사후 첫 전시를 통해 한국 미술계에 그의 존재가 각인됐다. 이응노의 ‘문자 추상’이 처음 선보인 것도 1975년 갤러리현대 전시에서였다. 1979년 ‘한국현대미술 4인의 방법 전’은 구상 위주의 한국미술계에 추상미술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지금 단색화로 이름을 날리는 김창렬의 ‘물방울 회화’, 박서보의 ‘묘법’, 윤형근의 ‘블루엄버’,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등 4인의 추상화가들의 작품이 이때 소개됐다.
이처럼 화랑은 작가와 함께 성장한다. 그런 점에서 전시에 나온 천경자의 소품 ‘하와이 가는 길’은 특별하다. 1969년 신문회관 전시 때 나온 작품이었다. 그때 6000원에 나온 작품을 박 회장이 갖고 싶어 3000원에 살 수 없냐고 부탁했을 때 작가는 단칼에 거절했다. 작가는 그렇게 아꼈던 작품을 이듬해 현대화랑 개관식 날 박 회장에게 깜짝 선물했다.
이번 50주년 전시는 미술 생태계를 키워가는 주요 주체로서 컬렉터에게 눈길을 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갤러리현대에서 소개된 뒤 미술 애호가에게 팔렸던 작품들이 전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컬렉터들이 50주년을 축하하며 소장 작품을 전시에 선뜻 내놨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컬렉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신문을 보는 사람들’ 등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을 타산지석 사례로 들었다. 이들 작품은 한국전쟁 직후 한국에 있던 미국인이 사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그 바람에 국내 전시가 불발되다가 2015년 갤러리현대 이중섭 회고전에서 60년 만에 한국에 소개될 수 있었다.
5월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로 온라인으로만 우선 공개됐다. 현장 관람은 5월 12일부터.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