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자발적 기부’를 전제로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방침을 밝혔지만 23일 국회에선 관련 논의가 전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발목잡기를 그만하라”며 미래통합당을 압박하는 동시에 물밑협상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전날 정부에 추가경정예산 수정안 제출을 요구한 통합당은 “기획재정부가 예산안을 만들어 보고하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긴급’ 이름이 무색한 것은 물론, 재난지원금 지급도 요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야의 공 돌리기 게임이 계속되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나서 여야에 합의를 촉구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민주당은 29일 본회의를 열어 추경을 처리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 역시 불투명하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당정 합의안을 가져오면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며 “통합당은 예산 심사 절차에 착수해 달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최근 30년간 역대 추경 심사에서 수정안 제출 사례가 없고, 본예산 역시 2009년 금융위기 때 한 번뿐이었다며 야당의 수정안 제출을 무리한 요구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징검다리 휴일이 시작되는 30일 이전 처리를 목표로 통합당 원내지도부와 물밑 접촉도 시도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통합당은 여전히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2차 추경 심사에 소극적인 태도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김재원 통합당 정책위의장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여당이 정부와 협의했다는 예산안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심사할 수 있다”며 예산안 제출을 거듭 요구했다. 그는 ‘발목잡기’라는 여당 비판에 대해 “(수정안을 제출한) 전례가 있다. 수정안이 올라온다면 추경안은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예산총액 규모 등 22개의 공개 질의 사항을 제시하며, 예산안과 함께 제출해 달라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앞서 오전 CBS라디오에서도 자발적 기부에 대해 “정부 운영을 시민단체 운영하듯이 하는 것 아닌가. 나라를 협찬받아서 운영할 수는 없다”며 “국채를 발행해 국민에게 지원금을 나눠주고, 또 기부를 받아서 그 부분을 충당하겠다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운영 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추경 처리가 지연돼 4월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5월 15일까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인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재 국회가 열려 있고,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 긴급재정명령권은 국회가 닫혀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국회가 안 열리고 재난지원금을 줄 수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극단적 상황을 지금 검토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이 여러 차례 신속한 처리를 주문한 만큼 여야 대치가 장기화될 경우 정치적 결단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끊이지 않고 있다.
김나래 임성수 이상헌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