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어오르는 ‘이탈렉시트’ 여론… 코로나 피해 큰데 지원 못받아

입력 2020-04-24 04:06
“이탈리아가 유럽연합(EU)에 대한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본 이탈리아에서 ‘이탈렉시트’(Italexit·이탈리아의 EU 탈퇴)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EU로부터 외면당했다는 배신감이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뭔가가 터졌다”며 “EU를 향한 분노는 이탈리아 정부 심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수도 로마의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탈리아는 EU로부터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얻지 못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컨설팅업체 테크네의 최근 조사에서는 EU 탈퇴에 찬성한다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응답이 49%로 나타났다. 2018년 말 같은 조사 때보다 20% 포인트나 올랐다. 이탈리아 국민들의 반EU 감정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EU로부터 이렇다 할 도움을 받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이탈리아는 지난달 초 EU 회원국들에 마스크 등 의료용품과 의료진 지원을 요청했지만 화답한 나라는 없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6일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EU는 코로나19가 유럽에서 확산하기 시작했을 때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회원국은 이탈리아를 충분히 지원하지 못했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이탈리아가 제안한 EU 공동채권 발행도 재정적 여유가 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탈리아의 친EU 정당인 자유주의행동당조차 최근 당원들로부터 “왜 우리가 EU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필요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탈렉시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아직 낮지만 정치적으로는 이미 쟁점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은 “EU 탈퇴가 (이탈리아에) 도움이 된다면 ‘고맙다’는 인사 없이 작별을 고하자”고 언급했다. 살비니 상원의원은 공공연하게 EU 탈퇴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결속과 연대의 가치를 내건 EU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심각한 갈등과 리더십 위기를 노출했다. 최근에는 경제 회생 방안을 둘러싼 회원국 간 갈등으로 교황이 단합을 호소하고 나섰을 정도다. EU 27개 회원국 정상은 23일 화상회의를 열어 경제대응책 후속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