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동무·함성 없었지만, 공 차니 답답한 가슴 뻥∼

입력 2020-04-24 04:04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와 K리그2 수원 FC 선수들이 23일 인천 중구 숭의아레나에서 열린 연습경기에서 공중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창궐 이후 K리그 프로구단 사이의 첫 경기다. 인천=최종학 선임기자

“와 축구장 잔디만 봐도 행복하다.”

탁트인 초록빛 잔디를 마주하자 마스크를 낀 구단 관계자와 취재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어 선수들은 잔디 위에 설치된 파란 휴지통에 끼고 온 마스크와 검정 위생장갑을 벗어 넣었다. 성인 키 간격으로 두 줄 도열한 양팀 선수들은 예년처럼 악수를 하지 않고 자리에서 허리 숙여 인사한 뒤 각자의 골문 방향으로 향했다. 경기 도중 마시는 물병에는 전염을 막기 위해 선수들 각자의 이름이 적혔다.

23일 경기 중 선수들에게 지급된 물병에는 전염을 막기 위해 각 선수들의 이름이 적혔다. 인천=최종학 선임기자

K리그1 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와 K리그2 수원 FC는 23일 인천 중구 숭의아레나(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연습경기를 치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프로구단 간 연습경기다. 정부가 지난 19일 사회적 격리 조치를 완화하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튿날 각 구단 간 연습경기를 허용하고 위생 유지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이에 따라 지난 22일 강원 FC가 세미프로인 K리그3 구단 춘천 시민축구단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다만 프로구단 사이의 경기는 이날 인천과 수원FC의 경기가 처음이다. 경기는 전반 28분 마사의 코너킥 골로 수원F가 이겼다.

‘코로나 시대의 축구’

K리그 개막이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에서 이날 경기는 리그 진행의 예행 연습 성격으로 치러졌다. 방문팀인 수원F 선수단은 기존 원정경기처럼 18명 1군 엔트리와 2군 14명이 인천에 들렀다. 수원F 관계자는 “위생을 위한 몇 가지 조치를 제외하면 평소 리그에서 준비하는 것처럼 페이스북 중계와 영상, 사진 촬영 팀도 함께 왔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수원F 선수단은 구단 버스 1대가 아닌 2대를 대절, 선수들을 나눠타게 해 접촉을 최소화했다. 인천 선수단 역시 경기장으로 이동하면서 개인소독 조치를 하고 마스크를 버스 탑승 전부터 쓰도록 하는 등 위생조치를 이어갔다. 인천 구단 관계자는 “그간 선수단은 주5일 인근 승기구장으로 출퇴근하며 평소 시즌과 동일하게 하루 2시간씩 훈련을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인천은 시즌 개막 전까지 치를 대학팀들과의 연습경기는 비공개로 시행할 예정이다.

양 팀 선수들은 이날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한 뒤 언론 접촉 없이 몸을 풀었다. 경기 시작 전 심판진이 반지나 목걸이 등 위험한 장구가 있는지 선수들을 검사하는 과정도 평소처럼 입장통로가 아닌 야외 잔디 위에서 시행됐다. 시즌 중에 이뤄지던 믹스트존 인터뷰도 생략됐다. 경기가 끝난 뒤 양팀 감독과 선수단의 공식 기자회견은 전염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잔디 위에서 진행됐다.

관중 환호도 없이… 선수들 외침만

연맹은 연습경기에 앞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선수들 사이 대화나 과도한 신체접촉을 금지했다. 경기 중 침을 뱉는 행위도 할 수 없도록 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지침을 처음 들었을 때는 ‘되겠느냐’하는 반응이 일부 있었다”면서도 “안전을 위한 조치이니만큼 결국 일단 따라보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경기에서 판정 등으로 경기가 중단됐을 때 선수들끼리 다가가 일대일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 경기 중 서로 위치를 지시하고 의사소통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멀찍이 떨어져서 큰 소리로 하는 게 전부였다. 심판들 역시 구두경고를 선수에게 직접 다가가기보다 멀찍이서 손짓으로 했다.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진 덕분에 선수들의 목소리는 더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올 시즌 암투병으로 물러난 유상철 명예감독을 대신해 인천을 맡은 임완섭 감독은 “마스크를 쓰고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응원문화가 발달한 축구의 특성 상 이색적인 풍경도 나왔다. 후반 중반이 지나자 경기장 바깥에서 박수와 함께 인천의 응원가와 구호가 흐릿하게 울려퍼졌다. 인천을 응원하러 왔지만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었던 초등학생 팬들이 목청껏 부른 응원가였다. 인천 구단 관계자는 “구단에서 축구교실처럼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라서 유독 어린이 팬들이 많다”면서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밖에서라도 응원가를 부른 듯 하다”고 말했다.

인천=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