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추행 오거돈 시장 사퇴… 지도층의 한심한 성윤리

입력 2020-04-24 04:01
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전격 사퇴했다. 광역자치단체장으로는 2년 전 비서 성폭행 혐의로 물러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이어 두 번째다. 오 시장은 20여 일 전 시장 집무실에서 20대 여직원을 강제 추행했다고 한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가 법무부 안태근 국장으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국내에서도 ‘미투운동’이 시작됐다. 많은 유명 인사들이 처벌받거나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 미투운동으로 한국 사회의 남성 우위 문화와 성차별 관행이 뿌리째 흔들렸다고 여겨졌다. 오 시장의 사례는 ‘아직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오 시장은 지난해에도 통역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이 문제를 제기한 강용석 전 의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와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다. 그 와중에 집무실에서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건 충격적이다. 그는 2018년 부산시 산하 기관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들을 양옆에 앉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개인적 일탈로만 보기도 어렵다. 안 전 지사 사건과 묶어 진보파의 문제로 공격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n번방’ 사건을 두고 “호기심에 n번방에 들어온 사람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조직 구성원의 인식은 급변했는데 사회 지도층의 성인지 감수성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해석이 타당하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차별 등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성차별 문제의 근원에는 권력 문제가 있다. 오 시장에 대해 견제와 감시가 작동했다면 대낮에 집무실에서 부하 직원을 성추행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안 전 지사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역 사회의 견제 기능이 무력해 광역자치단체장은 물론 기초자치단체장도 ‘소왕국의 왕’ 같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공무원들로선 무소불위의 인사권을 쥔 자치단체장에게 철저히 복종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오 시장이 성추행을 서슴없이 시도할 토양이 됐을 것이다. 공직사회의 성 평등 인식과 교육은 민간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많은 기업에서 성추행 가해자에 대한 일벌백계, 피해자 철저 보호, 강력한 성 인지 교육이 이미 ‘표준’이 됐다. 부산시를 비롯해 공직사회는 성차별적 관행과 문화를 반성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다시 꼼꼼히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