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뒷담] ‘정치하냐’는 모욕까지… 기재부 코로나 수난시대

입력 2020-04-24 05:11

정부부처 안에서 ‘갑(甲) 중의 갑’으로 불리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최근 뒤숭숭한 분위기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여권과의 마찰, 공직사회 내부의 눈총, 검찰 압수수색까지 겹치면서다.

기재부 예산실은 모든 정부부처의 한 해 살림을 총괄하는 곳이다. 정부부처는 물론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까지도 소관 사업 예산을 타내기 위해 예산실을 찾아 읍소를 한다. 내부적으로는 국민 세금으로 모은 국가재정을 꼭 필요한데 쓰도록 배분하는 중책을 맡았다는 자부심도 높다.

그런데 최근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논란을 거치면서 이러한 자부심은 여지없이 훼손됐다. 기재부는 그동안 재난지원금의 선별 지원을 주장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이 이제 시작인 만큼 향후 계속될 충격에 대비하려면 재정 여력을 최대한 비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선별 지원이 보편 지원보다 소비촉진 및 경기회복 효과가 크다는 점도 염두에 뒀다.

하지만 여당은 전 가구 재난지원금 지원이 총선 공약이라는 점만 부각하며 기재부를 몰아붙였다. 심지어 “기재부가 정치를 한다” 등의 모욕적 언사도 내뱉었다. 결국 지난 22일 고소득자 기부 유도를 전제로 전 가구 지급 방침을 밝히자 기재부 안에서는 “결국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이겼다” “위에서 찍어 누르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탄식이 쏟아졌다.

예산실이 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을 위해 공무원 연가보상비 삭감안을 들고나온 것에 대해서는 행정부 안에서 잡음이 나왔다. 당장 공무원 노조가 “공무원의 희생만 강요했다”며 반발했다. 연가보상비 삭감안 대상에 청와대 등 일부 기관이 빠졌다는 시민단체 지적이 제기되자 다른 부처에서도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23일 “사실 연가보상비 삭감 방침에 제일 억울한 곳 중 하나가 예산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실 직원들은 9월 초 내년도 예산안 제출과 12월 국회 예산안 처리를 전후해 밥 먹듯이 야근과 밤샘 근무를 한다. 상반기가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지만 올해는 연초부터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지원 등으로 격무에 시달려 왔다. 그러다 보니 휴가는 남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2일에는 박근혜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 의혹과 관련해 예산실 안전예산과가 검찰 압수수색을 당했다.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4~5년 전 일이라 현재 직원 중에 당시 실무자도 없을 것”이라며 “최근 들어 직원들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