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 A씨는 세금을 내지 않고 자녀에게 증여할 방법을 고민하다 ‘부동산 법인’이란 묘안을 떠올렸다. 20대 초반인 자녀 B씨 명의의 광고대행·부동산 법인을 설립해 편법 증여를 계획했다. 허위 광고료를 수단으로 삼았다. A씨의 병원이 B씨의 부동산 법인에 광고를 의뢰하는 형식을 취하며 광고료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지급했다. 자녀 법인 수익의 96%가 A씨 병원에서 흘러들어 왔다. B씨는 이 돈으로 20억원대의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를 법인 명의로 구매했다.
법인 명의라는 점 때문에 강화된 부동산 규제에도 아파트 구매 당시 자금 출처를 조사받지 않았다. 해당 부동산 법인의 이상징후를 포착한 국세청은 즉각 세무조사에 돌입했다. 국세청은 허위 광고료 지급을 비롯해 A씨의 병원 탈루 혐의까지도 낱낱이 조사할 계획이다.
1인 또는 가족 명의의 부동산 법인이 부동산 규제의 허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A씨 가족 사례처럼 법인을 설립한 뒤 편법 증여한 돈으로 법인 명의 주택을 구매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개인 간 거래가 아니다 보니 고가 아파트 구매 시 필요한 자금 출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악용했다.
부동산 법인은 다주택자 규제 회피 수단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저가로 법인에 넘기는 형식을 취하면 세금도 안 낸다. 법인은 자신이나 가족 소유이다보니 명의가 바뀌어도 손해볼 일이 없는 거래다. 의심되는 사례가 넘친다. 지난 1분기 개인이 법인에 양도한 아파트 거래량은 1만3142건이나 된다. 지난해 전체 거래(1만7893건)의 73.4%에 해당한다.
이에 국세청은 편법 수단으로 부동산 법인을 활용한 의혹이 있는 1인·가족 부동산 법인 27곳을 세무조사한다고 23일 밝혔다.
편법 증여와 다주택자 규제 회피 의혹이 있는 곳이 각각 9곳, 5곳으로 집계됐다. 자금 출처를 밝히지 않기 위해 설립했다는 의혹을 받는 곳도 4곳이다.
전수검증도 실시한다. 최근 설립된 1인·가족법인 6754곳 전체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검증 대상 법인이 소유한 아파트만도 2만1462개에 달한다. 검증 과정에서 탈루 혐의가 의심되면 즉각 세무조사로 전환할 계획이다.
악용 사례를 막기 위해 제도 개선도 건의하기로 했다. 다주택자 규제를 피하려 부동산 법인을 악용할 경우 중과세를 적용하도록 기획재정부 등에 제안할 예정이다. 임광현 국세청 조사국장은 “법인이 부동산을 구매할 때 자금 출처를 밝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