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한국프로야구 정규리그의 미국 내 중계권 협상이 난항에 빠졌다.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이 협상 과정에서 경기 영상에 대한 무료 제공을 요구하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극복하고 세계에서 2번째로 빠른 개막을 준비하는 한국프로야구는 먼저 시작된 대만보다 한 등급 위의 리그로 평가된다. ‘야구 본고장’ 미국 내 중계가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무료 중계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KBO 관계자는 23일 “ESPN이 한국프로야구 중계권의 국외 판권 소유자에게 경기 영상의 무료 제공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 한국 경기의 미국 중계는 긍정적인 일이지만 무료 콘텐츠로 평가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며 “협상 과정이나 계약 결과에 따른 수익·손실은 모두 판권 소유자의 몫이지만, KBO는 한국 경기가 미국에서 무료로 중계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KBO는 지난 3월 한국프로야구의 국외 판권 공개 입찰을 실시했고, 단독 입찰한 국내 미디어 기업 에이클라가 권리를 확보했다. ESPN은 이달 초 에이클라와 접촉해 한국프로야구 정규리그의 미국 내 중계권을 문의했지만 경기 영상을 무료로 요구하고 있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KBO는 에이클라와 ESPN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나누거나 협상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KBO 관계자는 “한국프로야구를 미국에서 무료 콘텐츠로 인식하게 만드는 협상이라면 부정적 의견을 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SPN에 경기 영상을 무료로 제공하면 비용 손실도 발생한다. 영상 제작과 미국 송출로 발생하는 비용은 모두 에이클라의 몫이 된다.
KBO는 당초 지난달 28일로 예정됐던 정규리그 개막일을 5월 5일로 연기했다. 비록 38일이나 지연됐고 당분간 관중을 유치하지 않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셧다운’ 된 세계 프로스포츠 상황과 비교하면 순탄한 셈이다. 한국은 지난 12일 무관중 경기로 개막한 대만에 이어 세계 2번째로 프로야구 정규리그를 시작하게 됐다. 대만 인터넷매체 신원윈은 한국에서 정규리그 개막일이 확정되자 “대만프로야구가 지금의 독보적인 입지를 잃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개막을 기약하기 어렵다. MLB 사무국은 질병통제예방센터 지침에 따라 개막일을 5월 11일 이후로 잠정했다. 30개 구단을 애리조나주로 모아 정규리그를 시작하는 ‘애리조나 플랜’이 제시됐지만 LA 다저스 에이스 투수 클레이튼 커쇼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의 반발에 휘말려 논의에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독립기념일(7월 4일) 개막론도 거론된다.
KBO는 이미 지난 21일부터 근거리 팀 간 당일치기 방식으로 무관중 연습경기를 시작했다. AP·AFP통신과 같은 외신 기자들이 경기장으로 찾아올 만큼 한국프로야구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ESPN의 무료 중계권 요구는 미국 안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NBC방송은 “ESPN이 중계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한국프로야구 경기를 중계하겠다는 생각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알 수 없다.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양측이 공정하게 협상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