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의 CS 루이스’(크리스천센추리) ‘신앙과 씨름하는 방랑 기독인의 대변인’(뉴욕타임스) ‘복음주의권의 가장 논쟁적인 여성’(워싱턴포스트)….
레이첼 헬드 에반스를 표현하는 수식어다. 이처럼 호전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뭘까. 저자의 성장배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복음주의 성향이 강한 ‘바이블 벨트’ 테네시주 데이턴에서 자랐다. 미국 공립학교의 진화론 교육 논쟁을 불러일으킨 ‘스콥스 원숭이 재판’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유소년기와 사춘기 시절 온갖 고민의 해답을 성경에서 찾던 저자는 보수적인 기독교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그에게 성경은 정치 사회 경제 등 어떤 분야의 문제에도 정답만 제시하는 답안지였다.
현실은 달랐다. ‘가정·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제한돼야 한다’거나 ‘지구의 나이가 지질학자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젊다’는 보수 교회의 주장을 마주할 때마다 저자는 흔들렸다. 감명 깊게 읽었던 ‘노아의 방주’ 이야기나 여호수아의 여리고 전쟁에서도 ‘인류 파괴’와 ‘종족 학살’이란 민낯을 마주한다. 이쯤 되니 성경은 “한때 알았다고 생각한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일 뿐”이었다.
저자는 ‘성경 악플러’가 돼 기독교 신앙을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의 방랑은 전작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본 1년’과 ‘교회를 찾아서’에 소개됐다. 이번 책은 ‘가나안 성도’(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교인)였던 그가 어떻게 성경을 다시 사랑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유대인의 성경 해석법 ‘미드라시’와 성경 묵상법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해방신학과 페미니즘적 성경 해석 등을 접한 뒤 다시 성경을 펼친다. 책은 “삶의 복잡성을 과감히 끌어안을 것”을 주문하는 이들 관점으로 신구약 성경을 살펴본다. 모든 이에게 항상 동일한 처방만 내리지도 않는다.
단일 관점의 성경 해석을 정답이라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 인간은 전쟁과 노예제, 여성 차별을 옹호하는 성경 구절을 찾아냈고 그 반대 구절도 발견했다. 취사선택된 성경 구절은 상대 진영의 무기가 된다. 저자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며 성경을 읽자고 권한다. “사랑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가, 아니면 판단하기 위해 보는가.”
저자는 성경과의 화해 마지막 과정에서 여성의 강도권을 부정한(딤전 2:12) 바울과 화해한다. 1세기 사회에서 보면 여성을 동역자로 인정한 바울은 성평등주의자다. 이런 맥락을 안다면 질문을 고쳐야 한다. ‘여성도 설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여성의 설교가 복음 전파에 보탬이 되는가’로 말이다. 한국교회도 당면한 질문이다.
저자는 지난해 독감 부작용으로 남편과 두 자녀를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났다. 향년 37세. 재기발랄한 그의 글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쉽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