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점점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이 더 힘듭니다….”
대구의료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두 달째 돌보고 있는 허선우(41·사진) 대구의료원 간호사는 4월 말인데도 겨울옷을 입고 출퇴근하고 있다. 일이 끝나면 병원을 오가며 입은 옷을 벗어버리려 했지만 계절이 바뀌어도 코로나19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허 간호사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봄이 오는 줄도 몰랐다”며 “사람들은 점점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의료진은 오히려 지금이 더 힘든 시기”라고 했다.
20년 차인 그는 대구의료원이 감염병전담병원이 된 2월 22일부터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봤다. 처음 환자가 급격히 늘어날 때는 바빴지만 대부분 경증 환자였다. 허 간호사는 “최근에는 중증 환자를 받으면서 업무 강도는 더 세졌다”며 “만성 질환자나 와병 환자가 많은 요양병원 환자들을 받고 1주일은 간호사들이 울면서 퇴근했다”고 회고했다.
3월 말부터 그는 한사랑요양병원에서 온 환자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대부분 고령에 기저질환이 있는 요양병원 환자는 식사부터 기저귀 교체, 대소변 관리가 필요했다. 위독한 경우도 많았다. 발열이 이어지는 환자들은 계속 모니터링하며 처치를 해야 했다.
허 간호사는 “레벨D 방호복을 입고 2~3시간 환자를 돌보고 나오면 세탁기에서 방금 꺼낸 옷처럼 축축해졌다”며 “너무 힘드니까 저절로 눈물이 떨어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보자고 서로 다독였지만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 힘들어지면서 후배들에게 힘내자는 말도 미안했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의 사기도 많이 떨어졌다. 허 간호사는 코로나19 사태가 더 이어진다면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료인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일인 만큼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가족들도 지쳤다.
허 간호사는 처음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게 됐을 때 아이들을 친정에 맡겼다. 하지만 곧 친정 부모님도 지쳤고, 아이들을 다시 데려왔다. 그는 “초등학생인 아들이 매일 신규 확진자 수를 확인한다”며 “확진자가 줄면 엄마가 덜 바빠질 것 같다며 좋아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중증 환자는 돌보는 일도 힘들지만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을 때 상심이 크다고 했다. 허 간호사는 “온 힘을 다해 치료했는데 결국 돌아가실 때 힘이 빠진다”며 “뉴스에서 사망자 정보가 뜨면 우리는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돌보고 있는 호스피스 환자들에게도 종종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환자가 진통을 느낄 때 바로 처치해줘야 하지만 방호장구를 갖춰 입는 데 시간이 걸려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반대로 회복되는 환자를 지켜보는 건 의료진에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 허 간호사는 “요양병원에서 온 할머니가 병원에 올 때는 의식이 혼미했는데 2주 후 스스로 침대에 앉아있을 만큼 회복되신 모습을 보고선 매우 뿌듯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의료진들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의 조은별(29·사진) 간호사는 어린이병원에 머물던 산모가 확진자와 접촉해 코로나19에 감염되자 산모 대신 보름간 아기를 돌봤다. 조 간호사는 아기의 아버지까지 격리되면서 생후 28일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혼자 남게 돼 안타까워했다.
조 간호사는 전화 인터뷰에서 “한 달밖에 안 된 아기에게 내가 엄마면 뭘 해주고 싶을지 고민했다”고 했다. 신생아중환자실 7년 차 간호사로 아기의 발달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그는 “1개월째 접어든 아기들은 눈에 초점을 맞춰 사물을 보는 것을 좋아해 초점책을 보여줬다”고 했다.
허 간호사와 조 간호사는 한목소리로 ‘코로나19의 끝’을 간절히 기대했다. 조 간호사는 “지난달 31일 병원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비상이었다”며 “언제든 이런 일이 또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속적으로 노력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허 간호사는 “퇴근길에 술집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되곤 한다”며 “병원 밖에는 확진자가 줄었지만 병원 안에는 아직 환자들이 남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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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