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를 16년 넘게 이끌며 ‘모비스 왕조’를 세운 유재학(57) 감독이 3년 더 감독직을 맡기로 했다. 계약대로라면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상 단일팀 최장기 집권 감독이다. 미국 NBA에서 24년 역대 최장기 집권 중인 그렉 포포비치(71) 샌안토니오 스퍼스 감독에 비견할 만한 기록이다.
현대모비스는 22일 유 감독과 전날 2023년 5월 31일까지 3년 재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번 시즌 성적이 다소 부진했지만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점, 지난 시즌 통합우승을 한 공적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계약기간을 채우면 19년2개월 동안 현대모비스 감독을 역임, 국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한 팀 최장 기간 집권 감독이 된다.
국내에서 프로구단 단일팀 지도 경력으로 현재 유 감독을 앞선 건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를 17년11개월 동안 이끈 김응용 감독이 유일하다. 과거 신치용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이 삼성화재를 2015년까지 19년6개월간 지도했지만 프로배구 창설이 2005년으로 늦은 탓에 프로구단 지도 기록은 10년5개월이다. NBA에서도 19년 넘게 한 팀을 지도한 건 포포비치 감독과 은퇴한 제리 슬로언 전 유타 재즈 감독뿐이다.
유 감독은 ‘1만 가지의 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의 ‘만수(萬手)’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통산 승수 662승으로 프로농구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재임하면서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각각 6번 승리하며 현대모비스를 일약 명문 구단에 올려놨다. 2010년과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는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각각 은메달과 금메달을 따냈다.
유 감독의 장기 집권은 팀의 앞날을 멀리 내다보고 계획했기에 가능했다. 저평가 받은 선수들을 발굴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는 점, 개인보다 팀을 중시하는 ‘시스템 농구’ 신봉자라는 점에서 역시 장기 집권 중인 포포비치 감독과도 닮았다. 고비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고 팀을 정비해 매번 정상을 되찾아왔다. 구단이 다시 한 번 유 감독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이 같은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유 감독은 “팀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시즌 통합우승을 거뒀지만 중심 선수인 라건아와 이대성을 전주 KCC로 보낸 뒤 이번 시즌을 8위로 마감했다. 시즌이 종료된 뒤 애제자이자 팀 전성기의 주역 양동근도 농구화를 벗었다. 양동근과 함께 오랜 시간 지도한 함지훈도 어느덧 나이가 만 35세로 노장이 됐다. 바야흐로 또다른 팀을 구축해야 하는 시기인 셈이다. 1년 넘는 재활에서 복귀한 차세대 토종 빅맨 이종현이나 이번 시즌 KCC에서 이적해온 뒤 잠재력을 보여준 김국찬, 영건 가드 서명진 등의 성장이 중요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즌이 조기 종료된 뒤 구단들은 계약기간이 막바지에 이른 감독들과 재계약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삼성은 이상민 감독과 이날 2년 재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원주 DB를 이번 시즌 정규리그 1위로 이끈 이상범 감독, 리그 최약체로 꼽히던 인천 전자랜드를 궤도에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유도훈 감독 역시 조만간 재계약이 유력하다. 다만 창원 LG는 자진 사임 의사를 밝힌 현주엽 감독을 지난 9일 떠나보냈다. 여자프로농구 WKBL에서는 용인 삼성생명 임근배 감독이 이날 2년 재계약에 도장을 찍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