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김섬길(23)씨는 인천국제공항 도착 전 기내에서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지를 받았다. 연노란색 종이에는 이름, 주소, 휴대전화번호, 여권번호, 항공기 편명, 최근 21일간 발열·오한·두통 등 증상을 체크하는 난이 있었다. 김씨는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적었다. ‘발열’에도 V자 표시를 했다. 앞서 경유한 미국 디트로이트공항에서 검사받았을 때 37.7도가 나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특별입국 절차가 시작됐다. 검역소 직원이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애플리케이션(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라고 했다. 앱을 내려받고 보니 개인의 건강 정보 등 민감 정보 수집 이용에 동의해야 했다. ‘귀하는 동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는 안내가 있었지만 거부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다시 잰 체온이 38.8도였다. 김씨는 인천공항 인근 격리시설로 옮겨졌다. 시설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주소지가 있는 경기도 파주의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김씨는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로 여러 안내 사항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격리시설에서 하루를 묵고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은 뒤 파주 집으로 갔다. 자가격리 기간 하루 두 차례씩 자가 진단을 하고 결과를 앱에 기록했다. 깜빡 잊고 기록을 하지 않았더니 방역 당국에서 바로 문자나 전화가 왔다. 김씨는 이런 조치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오히려 “정부가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의 삶에 더 많이 개입하는 정부가 더 큰 신뢰를 얻고 있다. 정보를 공개하고 이동을 제한할수록 더 나은 감염병 확산 방지 결과가 나오고 있어서다. 한국의 확진자 동선 공개와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마스크 5부제는 전 세계에서 모범 사례로 주목받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부는 이전보다 더 강한 감시와 통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개인정보의 수집, 활용 범위도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섬길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시민들도 안전을 위해 이를 수용한다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으로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중시했던 서구 국가들도 변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의 접촉자를 추적하는 앱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도 블루투스 기술을 이용한 확진자 추적 앱을 개발하겠다고 했다. 최근 미국은 제너럴모터스, 포드 등 민간 기업에 의료물자 생산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개인정보를 활용해 확진자 동선을 추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해온) 공화당 정부마저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팬데믹이 일상화되면서 국가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불안 요인도 정부를 강력하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박성원 국회 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바이오 테러’를 우려하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이 바이러스를 새로운 테러 수단으로 인식하고 무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달 ‘백인 우월주의자 등 극단적 인종주의 그룹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구성원으로 하여금 경찰관과 유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첩보를 각 지역 경찰에 알렸다. 박 연구위원은 “여러 감시체계에 대한 명분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의료 분야에서 공공성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나라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공공 병원이 치료와 방역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실제 유럽을 중심으로 공공의료 투자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영국은 국민건강보건서비스(NHS) 및 공공의료서비스에 코로나 대응을 위한 50억 파운드(약 7조5743억원)를 투입했다. 이어 2024년까지 339억 파운드(약 51조3537억원)를 투입해 간호사 증원 등을 하기로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 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공공의료 인력과 시설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직후 공공의료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 등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에 비해 적다. 인구 1000명당 공공의료기관 병상은 1.25개로 프랑스 3.68개, 일본 3.55개의 3분의 1 수준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단감염에 대한 인식이 중요시되면서 공공의료나 질병 관리가 과거보다 더 강조될 것”이라며 “(공공성을 강조하는) 그런 차원에서 정책이나 인식 변화가 크게 올 것”이라고 말했다.
‘강한 정부’는 권력 남용과 민주주의 위기 등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내에서는 자가격리 이탈자 방지를 위해 제안된 전자팔찌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를 비판하는 측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실효성에 비해 기본권을 과하게 제한한다”고 말했다. 동선이 공개된 확진자 중 일부는 과도한 공개로 사생활이 침해됐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일본에서는 민간 기업들이 정부가 확진자 동선 파악을 위해 개인정보를 요구하더라도 특정 개인과 관련한 정보는 줄 수 없다며 난감해한 일이 논란이 됐다.
▒▒▒ 전문가 전망 ▒▒▒
홍준형 서울대 교수·SNU 국가전략위원장
“바이러스 위험 계속될 가능성 국가 컨트롤타워 역할 더 커져”
문명재 연세대 교수(미래정부연구센터 단장)
“강하고 정교한 스마트 행정 시대 사적·공적 영역 충돌, 합의 필요”
서용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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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