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제한적이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됐다. 종교집회도 조심스럽게 재개될 예정이다. 물론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삶에 관한 논의가 각계에서 시작되고 있다. 분명한 건 우리는 머잖아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난 수개월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내 경우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물렀던 경우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나 목회적으로 당황했다. 많은 논란과 혼란을 겪었다. 사람들의 서늘한 눈초리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지금까지 미뤄뒀던 온라인 시스템을 정착시킨 교회가 있고, 더 나은 예배와 신앙 콘텐츠를 제작하려는 창의적 노력도 있었다. 교회에 가지 않으니 오히려 더 진실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리게 됐다는 이들도 있다.
매일 아침 휴대전화의 예배 알람이 옛 교회 새벽 종소리처럼 이른 잠을 깨운다. 희미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알람 소리가 묘하게도 나의 단잠을 깨운다. 온라인에 접속하고 경건하게 무릎 꿇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전엔 한동안 잊고 지낸 새벽기도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수요일 저녁, 바쁜 일이 있어 예배 시간을 한참 넘겨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휴대전화에 저장된 알람에 따라 뒤늦게 온라인에 접속해 예배에 참여했다. 늦었지만 예배의 감동은 동일하다. 이상하게도 목사님 말씀이 한 구절 한 구절 더 또렷하게 들린다. 동시성을 넘어 비동시적 예배 참여가 가능해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부담 없이 빠졌던 수요 말씀 사경회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주일엔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 모여 온라인에 접속해 예배를 드린다. 처음엔 키득거리던 아이들도 이내 함께 찬송하며 예배한다. 어른 예배를 지루해하던 녀석이 불평 없이 아빠와 함께 정성스레 예배에 참석한다. 헌금도 온라인으로 이체하며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코로나19 이전, 주일마다 교회를 향해 몸은 갔지만 습관적 종교 행위에 머물던 영성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다.
온라인 예배의 장점과 유익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익숙해지면 다시 타성에 빠져버릴 테다. 무엇보다 이전에 누리던 성도와의 교제는 온라인으로 대체하기 어려웠다. 오랫동안 교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갑자기 이들의 얼굴이 참 그립고 보고 싶다. 곧 오프라인 예배가 재개돼 교우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코로나19로 닫혀있던 교회당 문이 열리고, 성도들은 복구된 교회에서 얼굴을 맞대고 반갑게 재회할 것이다. 언젠가 마스크를 벗고 힘차게 찬양하며 예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현장 예배의 기쁨을 넘어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설렘이 얼마 만이던가. 기술의 첨단화로 인한 산물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진짜 예배와 코이노니아 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시작된 온라인 예배가 오히려 신앙과 교회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던 건 우리가 본래의 교회를 한동안 잊고 살았기 때문은 아닐까. 두 달여 만에 우리는 교회로 돌아간다. 그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윤영훈(성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