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남매 중 막내로 4살 때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엄마는 저를 낳으시고 많이 편찮으셨다고 합니다. 병원도 다니고 굿도 해 봤지만 차도가 없고 병이 점점 더 심해질 때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 깨끗하게 치유 받았습니다. 아빠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엄마가 치유되는 것을 목격했기에 교회 출석을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시는 줄 알면서 몇몇 친구들과 당을 짓고 새로 온 친구들을 끼워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청년이 돼 친구를 따라 큰 교회로 옮겨 중등부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교사를 비난하고 부목사님의 말씀을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기도에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이 계신 것 같고 응답이 없으면 안 계신 것 같아 신앙생활에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선교사님을 만나 기도훈련을 받으며 영적 세계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 후 북한선교의 비전을 받았고 그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2009년 결혼 후 남편과 저는 북한선교에 헌신하고자 아무 연고 없는 파주 민통선 안 통일촌에서 살게 됐습니다. 북한선교를 위해 들어간 곳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훈련장소로 삼으셨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선교사님과 함께 중국을 오가며 빵을 만들어 북한 애육원에 보내고 꽃제비 사역 등을 하며 많은 기적과 이사를 체험했습니다. 저는 1남 1녀를 낳고 기도로 선교에 동역하기 위해 세상을 끊고 만나만으로 사는 훈련을 했습니다.
평신도 사역자라서 수입이 없었기에 늘 생활비가 궁했습니다. 하지만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채워졌고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광야 훈련을 마쳤다고 생각했습니다.
5년의 헌신을 마치고 운정으로 이사했는데 하나님께서 순복음삼마교회로 인도해 주시고 좋은 장막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됐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염려, 걱정, 두려움이 몰려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000만원을 날렸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래도 살 수 있도록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2년 정도 지나 집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또다시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장막의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언제 또 문제가 발생할지 염려가 됐습니다. 목사님은 “세상에 하나님과 돈 신이라는 두 가지 신만이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살 줄 알았는데 돈의 문제가 생기자 믿음의 바닥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오경의 반복, 단순, 지속 훈련을 통해 자유로움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겠지, 거리에 나앉게 하시겠어’ 하는 담대함이 생기고 평안해졌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한 후 명의 이전 과정 중에 있습니다.
저는 최근까지 기독교 국제학교 체육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학교 사정으로 풀타임 교사가 필요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그만두게 됐습니다.
올해 초 삼마대안학교가 설립됐습니다. 풀타임 근무를 할 수 없어서 직장을 그만뒀는데, 갑자기 풀타임 교사를 하라는 담당 교역자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또다시 물질의 어려움은 기도로 해결해야할 과제였습니다. 남편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고 “아멘”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삼마대안학교 주임 교사로 학생들이 주님 안에서 자유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모세오경 훈련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걱정하고 불안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염려가 아닌 담대함으로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통해 하실 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긴 자’로 승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