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국지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대혼란 사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교회의 미래가 어떤 형태로 변화할 것인지 궁금해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매우 간단하게 답한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예수 안에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전이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
또한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한다”(시 91:9~10)고 하시며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위기가 다가올수록 목회자는 성도를 안전지대인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해야 한다.
출애굽기 26장을 보면 성막 문이 나오는데 이 문에 교회의 본질이 나온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성막문은 네 가지 색깔로 돼 있다. 자색은 왕을 상징하는 색깔이며 홍색은 예수님의 보혈을 뜻한다. 흰색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입어야 하는 세마포의 색깔이고 청색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거룩한 색깔이다.
이 색깔들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 말해준다. 성막문의 자색은 교회는 왕이 계시는 곳임을 뜻한다. 또한 홍색은 교회가 죄를 용서해주는 곳임을 말한다. 흰색은 세마포 옷으로 성도가 천국 갈 때 입는 옷이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이 보이는데 천국이 열릴 때마다 들어간 성도들이 입은 옷이 모두 하얀 세마포였다. 만약 흰 세마포를 준비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여러 번 언급한다.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뜻한다.(계 19:8) 또 예수의 피로 옷을 빨아서 흰 세마포가 되었다고 말한다.(계 7:14) 즉, 세마포 옷이란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은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세마포를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말씀으로 훈련할 때 그들이 변화되고 있는지, 열매를 맺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많은 설교가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셨기 때문에 율법과 상관없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방종의 삶을 살아선 안 된다.
우리가 주의 은혜를 알았다면 이후의 삶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세상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그 여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검은말시대가 나온다. 검은말 시대는 식량 전쟁이 다가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경제적 재앙을 말한다. 그때가 되면 기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계 6:6)
영적으로 감람유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을 말한다. 이들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기름 준비한 신부들’이었다. 포도주는 예수의 피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세상을 이기고 주님이 주시는 흰 세마포를 입을 것이다.
교회는 세상을 이기고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주님은 세마포를 입은 신부들에게 이마에 표를 찍어주셨다. 그 이름은 ‘예수’로 이들만이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다.(계 22:3~4)
청색은 거룩함을 의미한다. 성막문에서 청색을 사용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구별된 곳임을 말해준다. 교회는 세상과 가치가 다르다. 세상은 좋은 것, 높은 것,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지만 교회는 ‘돌봄’을 추구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순복음삼마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근간으로 훈련한다. 그의 신앙은 철저히 양보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삶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결단해야 할 일들이 있다. 세상의 가치를 버리는 것, 즉 할례였다.
아브라함 신앙의 정점에도 할례가 있었다.(골 2:11)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자신을 따라올 수 없다고 하셨다. 주님이 말씀하신 자신을 부인하는 삶이란 육신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그래서 순복음삼마교회는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반복해서 훈련한다. 그리고 그 길은 오직 원수를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성도들이 원수를 사랑한 후 그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삶이 회복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목회의 기쁨도 없다. 이러한 깨달음과 훈련은 단순 성경공부만으론 불가능하다.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
기독교는 윤리나 도덕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기독교인은 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가난과 저주를 해결해야 하는 사명도 함께 갖고 있다. 그래서 거룩성을 지키라는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