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프리랜서 작가 아사쿠라 마유미(46·사진)는 틈틈이 염색을 했다.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가 염색 중단을 선언하고 흰머리를 내버려 둔 건 2016년 9월부터다. 그는 “염색에 휘둘려온 인생”이 지겨웠다. 물론 염색하지 않는 삶을 버티는 일도 쉽진 않았다. 친구들보다 나이 들어 보일까 노심초사했고 대학 동기 모임에도 나가지 못했다.
1년이 흘러 아사쿠라는 멋진 백발의 여성으로 거듭났다. 그는 “자연이 선물해준 나의 그레이 헤어는 내 얼굴,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렸다”면서 ‘흰머리 기르기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세 가지 조언을 건넨다. “하나, 가족이나 헤어 디자이너 등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아군을 찾아라. 둘, 정리가 안 되는 시기에는 모자를 써라. 셋, 타인의 시선은 ‘와, 저 사람 멋있다’로 해석하라.”
이 같은 내용은 ‘고잉 그레이’의 중반부에 등장한다. 요리 건강 육아 등을 다루는 잡지를 발행하는 ‘주부의 벗’이 일본에서 출간된 ‘그레이 헤어라는 선택’을 번역하면서 배우 예수정, 화가 오금숙 등의 글을 보탠 책을 내놓았다. ‘고잉 그레이’에는 아사쿠라를 포함해 회색빛 도는 흰머리인 ‘그레이 헤어(grey hair)’를 선택한 일본 여성 32명의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한다. 흰머리에 어울리는 패션이나 메이크업도 소개해놓았으니 그레이 헤어로 ‘전향’하려는 이들에겐 요긴한 책일 될 듯싶다.
어쩌면 많은 독자에게 ‘고잉 그레이’는 별것 아닌 신간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보자.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나이는 평균 39세다. ‘100세 시대’가 시작됐다고들 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60년 동안 염색을 반복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는 그레이 헤어가 인기를 끄는 추세다. SNS에는 ‘고잉 그레이(#GoingGrey)’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흰머리 인증샷’을 올리는 여성이 늘고 있다. ‘고잉 그레이’는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화가 오금숙은 3년 전 척추 수술을 받은 뒤부터 ‘흰머리 여성’이 됐다. 책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그레이 헤어를 뽐내는 오금숙의 근사한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그레이 헤어 자체가 하나의 패션이고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레이 헤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나이듦을 받아들이세요. 온전한 나를 받아들이면 그것이 나만의 개성이 되거든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