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생일

입력 2020-04-23 20:30

미역국 대신 비타민 한 알 챙겨먹고
야간자율학습하는 딸
마중을 간다 너무 빨리 도착한 손이 문자를 읽고
차 한 대 없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태어난 날 교문 앞에서 기다려주는 것
친구들이 해준 과자목걸이 주렁주렁 매달고 나타난 딸과
종종 아빠가 자가용을 태워준다는 친구를
골목 입구까지 택시로 데려다주는 것 그리하여
자꾸 차를 얻어 타기 미안해
오늘은 그냥 버스 타고 갈래요 하던 딸에게
조금은 미안함을 덜어주는 것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을 먹지 않고 등교하여
급식으로 나온 미역국을 안 먹었다는 말에
바지 주머니 속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다가
슬며시 잡아본 딸의 손이
생크림케이크처럼 보드랍다

김정수의 ‘홀연, 선잠’ 중

이성천 문학평론가는 김정수 시인을 ‘가족주의자’로 규정했다. 소시민 가장의 곤궁한 삶을 시로 그려내는 데 능숙한 작가여서다. 시 ‘생일’에서도 마찬가지. 자가용이 없는 시인이 생일을 맞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은 “태어난 날 교문 앞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전부다. 시인은 “슬며시 잡아본 딸의 손이 생크림케이크처럼 보드랍다”고 하는데, 저런 말을 할 때 시인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미소를 지을 수도, 눈물을 글썽일 수도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