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 민(民)’ 자는 상형문자다. ‘사람 인(人)’ 자가 사람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문자라는 데는 별 의문이 없지만 民 자가 상형문자라는 건 곧바로 알아채기 어렵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금문(金文)에는 가로로 길쭉한 사람의 눈을 세로로 긴 도구로 찌른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민이 됐다고 한다. 내막을 듣고 나면 끔찍하다. 고대에는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거나 전쟁에서 패배해 노예가 된 자들의 한쪽 눈을 멀게 하여 멀리 도망갈 수 없도록 붙들어두고 죽을 때까지 노동력을 제공하게 했단다. 백성이란 바로 이런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그 단어가 지금까지 국민, 주민, 시민, 서민, 인민, 민중, 민심, 민속, 민주주의 등등에 두루 쓰이고 있다.
영어로 국민은 피플(people)이다. 국가와 국민을 모두 네이션(nation)이라고도 하지만 우리말 민을 대신하는 말로는 피플이 광범위하게 쓰인다. 그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마지막 문장에도 피플이 세 번이나 반복되지 않는가. 피플은 지배층이나 특권계층이 아닌 일반인, 보통 사람, 때로는 아랫사람을 뜻한다. 민만큼 끔찍한 말의 사연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동서양 여러 나라에서 국민이라는 말에 존칭이나 위엄이 내포돼 있던 건 아니었음이 틀림없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 땅에는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이 선포돼 있었다. 역사 속에 빛나는 훈민정음 반포도 아니고 국민교육헌장. 훈민정음이나 국민교육헌장이나 둘 다 민이 들어가긴 해도 민을 보는 두 개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앞엣것은 백성들이 자신이 말하고 싶은 뜻을 능히 펼칠 수 있도록 쉽게 익히고 편리하게 사용하라고 만든 것인 데 반해 후자는 국민들이 애써 힘들게 지켜야 하는 준칙이나 규범이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일 것을,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임을 귀가 닳도록 들어야 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노래와 국민교육헌장이 내 어린 학창 시절을 지배했다. 가슴에 흰 손수건을 붙이고 콧물을 훌쩍거리며 학교에 들어간 조무래기들은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해야 했다. 태어나서 고작 일고여덟 해를 살아온 아이들이 역사적 사명을 다짐하고 맹세해야 했던 그런 시절. 금문 시대에 만들어진 민의 유래로부터 국민이라는 말이 아주 크게 바뀌지는 않았던 그런 시대 말이다.
조선시대 허균은 이미 호민(豪民)을 이야기했다. 부림을 당하기만 하는 항민(恒民)이나 원망하고 탓하기만 하는 원민(怨民)과는 달리 정치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존재로서의 호민은 선거철에만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민은 단순한 피플이 아니다.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오로지 국민뿐이다.
카피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