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부산 해운대구 한 도로에서 30대 A씨가 공유 전동 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당시 A씨는 헬멧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 운전면허도 없었다. A씨는 무면허인데도 공유 전동 킥보드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에 전동 킥보드 서비스 업체들의 안전관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국내에서는 공유 전동 킥보드 서비스 업체를 제재할 법적·행정적 수단이 없다.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더라도 업체에 어떤 책임을 지울지 기준이 없다. 안전 규정이나 업체 관리를 전담하는 정부 부처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미국은 다르다. 일찍부터 전동 킥보드가 공유 경제 서비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전동 킥보드가 안전하게 운행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제도적 기반을 만들고, 서비스 제공 업체들에 대한 감독체계도 수반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서비스는 증가, 법적·관리는 ‘미흡’
전동 킥보드는 전기배터리를 기반으로 만든 1인용 이동수단이다. 플랫폼 업체가 전동 킥보드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요금을 받는 ‘공유 서비스’도 출시되면서 도시교통수단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2018년 9월 국내 최초로 ‘킥고잉’이 전동 킥보드 서비스를 개시했다. 25일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내에서는 10여개 업체가 약 1만대를 활용해 공유 전동 킥보스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주로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서비스가 몰렸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동 킥보드를 다루는 법적체계가 부족하다. 전동 킥보드 관련 전담 부처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기존 법체계에 전동 킥보드를 끼워넣어 ‘운송수단’으로 취급하는 데 그친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라 전동 킥보드를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하는 식이다. 최고 속도 시속 25㎞, 최대 중량 30㎏ 미만, 운전면허증 보유, 헬맷 착용 등 개인이 전동 킥보드를 어떻게 운행해야 하는지 기준만 정해져 있다.
이외에 전동 킥보드 서비스가 다른 운송서비스와 어떻게 다른지, 업체가 이용자들의 안전을 어떤 방식으로 책임져야 하는지 등 의무를 명시한 규정은 없다. 지자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 사업도 아니다. 정부는 지자체 간담회나 공문을 통해 자율적으로 규제를 도입하도록 유도만 하고 있다.
사고 발생 시 보상은 ‘개인 몫’
문제는 전동 킥보드 사고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5~2018년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들어온 전동 킥보드 사고는 총 528건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관련 사고는 2016년 49건에서 2018년 258건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전동 킥보드의 갑작스러운 도로운행을 빗대 ‘킥라니’(전동킥보드+고라니)라는 부정적 의미의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런데도 교통사고가 나면 이용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보험 등의 보호장치는 없다. 전동 킥보드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자동차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고, 개인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도 전무하다. 이 때문에 전동 킥보드 운전자가 보행자나 자전거 운전자를 다치게 하면 개인 돈으로 피해를 보상해줘야 한다. 이때 전동 킥보드는 오토바이로 간주된다. 전동 킥보드 운전자가 사람과 부딪히면 ‘이륜차’가 ‘보행자’를 친 것으로 다뤄져 피해보상액이 더 커질 수 있다. 전동 킥보드 서비스를 제공한 업체가 보험사와 계약을 맺어 이용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의무가입 사항이 아니라 사실상 이용자 보호장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가 선제적 관리체계 마련해야”
미국은 2017년부터 미 서부의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동 킥보드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하자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정부가 나서서 전동 킥보드 관리체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포틀랜드 교통국은 2018년 7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2043대의 공유 전동 킥보드를 운영했다. 이때 최대 주행속도는 시속 40㎞로 제한하고, 이용자가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하며 보도주행도 금지하는 식으로 규제 방안을 마련했다. 또 사업자가 전동 킥보드 사용 방법과 올바른 주차 방법 등을 이용자에게 알려야 하고, 헬멧을 무료 배치토록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전동 킥보드 이용자가 보도주행을 하거나 주차를 마구잡이로 하면 각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는 조례를 신설했다. 두 곳에서의 시범운영 결과 안전·주행·주차 규칙 등 적절한 규제와 관리 방안이 마련되면 안전한 운행을 유도하는 것뿐 아니라 도시 이동성까지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 증명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체계적인 제도 정착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공유 전동 킥보드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부적절한 주행·주차·안전 규칙과 사업자의 책임 관련 규정을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종일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전동 킥보드의 특성, 강점, 문제점을 파악해 도시교통수단으로 육성할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