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국제관계까지 흔들고 있다. 목숨을 위협하는 전염병 앞에서 각국은 체제의 장·단점은 물론 숨겨진 본능과 습관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선진 시스템을 자랑하던 유럽이 무기력하게 최대 피해를 입었다. 중국은 초기 발병 은폐·통제 논란부터 우한 전면봉쇄, 통계 축소 의혹, 바이러스 발원지 부인, 부실 의료용품 수출 등 다양한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중국은 단기간에 전염병을 차단하고도 과도한 방역 성과 자랑과 바이러스 발생 책임 떠넘기기, 아프리카인 차별 등으로 세계 여러 나라들과 척을 지게 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뒤 세계적인 반중국 정서가 표출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격화
코로나19 사태로 미국과 중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장기간 무역전쟁을 치른 양국은 전염병 사태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중국은 자국 내 감염 상황이 진정되자 갑자기 ‘코로나19 미국 발원설’을 들고 나왔다. 지난 2월말 중국 내 최고 감염병 전문가로 꼽히는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가 “코로나19가 꼭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 없다”고 운을 띄우자 관영 언론이 가세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중국이 발원지라는 생각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미국의 버먼 법무그룹은 지난달 40개국의 코로나19 피해자와 가족 1만명을 대리해 중국 책임을 묻는 집단소송을 미국 플로리다주 법원에 제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단호해졌다. 그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코로나19는 중국에서 막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고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앞서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기도 했고, “중국편을 든다”며 세계보건기구(WHO) 지원금 지급을 중단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부 장관은 최근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구도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반중국 정서 고조
중국은 자국내에서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이자 ‘방역 성과 외교’와 ‘마스크 외교’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의료 용품 품질 문제가 곳곳에서 불거진데다 중국의 책임 회피와 방역 성과 과시에 유럽 내 반중 정서도 고조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 코로나19 사망자가 넘쳐나는데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의 강력한 조치가 세계에 큰 공헌을 했다” “중국 인민이 세계에 소중한 시간을 벌어줬다”고 과시했다. 중국은 이어 각국에 방역 경험을 전수하겠다며 의료진을 파견하고 의료용품도 보내는 마스크 외교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중국산 마스크가 얼굴에 밀착이 안되거나 필터가 불량하다며 전량 리콜 조치했다. 필리핀과 스페인, 체코, 영국, 미국 등에서도 중국산 진단키트 등의 성능이 떨어져 ‘불량’이라는 불만이 이어졌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난데 없이 코로나19의 ‘이탈리아 발원설’을 보도해 현지 여론을 들쑤셔놓기도 했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최근 시진핑 주석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전 세계를 도는 중국 최대의 수출 히트상품은 코로나다” “코로나가 조만간 당신의 정치적 멸망을 의미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영국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 의뢰 설문조사에서는 영국 국민의 74%가 코로나19 전세계 확산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고 답했다.
‘흑인 차별’… 아프리카 외교도 위기
중국 내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인종 차별’ 논란이 불거져 아프리카에서도 반중 정서가 확산됐다. 중국 광저우에서는 코로나19 증상도 없는데 흑인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거나 호텔 예약을 거부당했다. 유튜브에는 중국 공안이 아프리카인을 연행하는 모습이나 거리에서 노숙하는 흑인들 영상이 유포돼 아프리카의 반중 여론에 불을 질렀다.
베이징 주재 아프리카 대사 그룹은 서한에서 “아프리카인에 대한 비인간적 조치는 인종차별에 해당한다”고 비난했다. 케냐의 한 정치인은 “모든 중국인들은 케냐를 떠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부채 외교’ 논란에도 아프리카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이번 흑인 차별 논란으로 아프리카에 들여온 중국정부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일대일로 참여국들이 중국 차관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에 빠지면 중국에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틈타 남중국해 휘젓는 중국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영유권 분쟁중인 남중국해에 시사(西沙)구와 난사(南沙)구 등 2개의 행정기관을 설치하며 지배력 강화에 나서 동남아 국가들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은 지난 14일에는 베트남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자국 해안 경비함과 해양탐사선을 진입시키기도 했다. 지난 11일에는 중국의 항공모함 랴오닝함과 호위함 5척이 미야코 해협을 통과해 대만 동부에서 남쪽으로 항행하며 위력을 과시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