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며 ‘이민 중단’ 카드를 꺼냈다. 반이민 정책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을 명분 삼아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시적이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이민 중단은 미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적(코로나19)의 공격에 맞서 위대한 미국 시민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으로의 이민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밤 10시가 넘어 이런 방침을 밝히면서 추가 설명은 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 관계자 2명을 인용해 현재 행정명령 초안이 작성 중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21일 서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WP는 “월요일 고위급 직원들 사이에서 논의된 이 명령은 외국인들에 의한 감염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이민을 중단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WP에 따르면 이민 금지 행정명령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미 국무부와 이민국(USCIS)에 즉각 비자 발급 중단을 지시해야 한다. WP는 “이러한 움직임은 전례가 없고 잠재적으로 미국 시민들의 약혼자와 자녀들, 가까운 친척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새로운 그린카드(영주권)와 취업 비자 제공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정식 명령이 이르면 며칠 안에 내려질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에 맞서 국경 폐쇄를 주장한 것처럼 합법 이민제도를 사실상 폐기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약 46만건의 이민 비자를 발급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61만여건에서 25% 정도 줄어든 수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미 언론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지난 1월에도 일부 국가에 대해 이민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무슬림 국가를 위주로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입국 금지에서 더 나아가 이민 비자 발급에 제한을 두려는 건 일단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하고 나면 미국에서 추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카토연구소의 알렉스 노라스텍 이민연구국장은 WP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최우선 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전염병 대유행과 공중보건을 명분으로 삼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놀랍다”며 “합법적인 이민을 완전히 폐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법적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다. 대통령이 이민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이민법과 2018년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정당하다고 인정한 것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 의회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무력화하는 법안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지난 2월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외국인 입국과 관련해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금지반대법(No Ban Act)’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어 상원 통과는 불투명하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